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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온기 May 29. 2021

얘들아, 엄마도 지구를 구할 수 있어

세상 널린 게 용기다




"얘들아 오늘 저녁 뭐 먹을래?"

아침이면 학교 가는 첫째와 둘째에게 늘 하는 질문이다

아이들이 크고 나서부터는 개인의 취향에 맞게 번갈아가며 아니면 순서대로 음식을 해주는 편이고

물어보고 난 뒤 원하는 음식을 해주면 아이들의 음식에 대한 만족도가 좀 상승하고, 덩달아 엄마의 점수가 소폭 상승하는 걸 느낄 수 있어서 은근히 즐기며 해주게 된다.


"음... 엄마 순댓국 먹고 싶어요"


12살과 9살 여자아이들의 음식취향이 좀 독특한 편에 속한다고 해야 할까? 좋게 말하면 아무거나 잘 먹는

딸들이다. 그중에 순대국밥도 포함되어 있고, 특히나 내장은 막내딸의 최애 메뉴이다.

(메탄가스를 줄이기 위해 되도록 육고기는 피하려 하지만, 이미 맛을 알아버린 아이들에게 신념을 바라는 건 좀 어려운 일이라서 천천히 해보기로 했다)

"그래 그럼 저녁은 순대국밥으로 먹자~"


나름 내가 음식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라 마음이 편하다 그러나 작년부터 시작한 코로나로  남편은 전혀 식당에 갈 수 없는 상황이라 배달로 시켜 먹을 수밖에 없는 현실

그럴 때 내게 필요한 건 '용기'였다


나의 첫 '용기'가 필요했던 날

명확한 제로 웨이스트라고 말할 수 없는 그때는 불과 얼마 안 된 과거지만,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들만

소소히 할 수 있었을 뿐, 나의 삶의 변화를 남들에게 보여주는 건 쉽지 않았었다.

에코백으로 장을 보러 간다거나, 분리수거 등은 나 혼자 할 수 있었고, 그걸 누구에게 보여주거나 겉으로 나타나는 것들이 아니었으니깐 맘 편히 할 수 있었던 '제로 웨이스트'생활이었지만

'용기'를 가지고 식당에 가서 그것도 순대국밥을 가져올 수 있는 진정한 용기는 샘솟지 않았다.

내 맘을 쉽게 움직이지 않게 하는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나의 성향은  늘 맨 뒷자리에 앉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도드라지는걸 결코 원하지 않고, 혹여 내가 한 선행도 남들이 알아주는 걸 꺼려한다 그런 내가 스테인리스 곰솥을 들고 순댓국을 사러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고, 나조차 그걸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남편은 더욱이 더 못하는 사람이다. 나 혼자 식당에서 밥은 먹을 수 있는 배포는 있었지만 남편은 혼자 식당에서 어색함에 혼자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배가 고파도 참고 집에 와서 먹는 사람이니

만약 남편에게 부탁한다 해도 해줄 거라 생각 안 했고. 나 역시 부탁할 생각을 0.00001%밖에 안 했다


그날의 선명한 기억

우리 집 현관문에서 나의 걸음으로 2분만 가면 있는 순대국밥집에서 사 오기로 맘먹은 그날

집에서 가장 큰 스테인리스 곰솥을 뚜껑 장착 후 현관문을 나섰다

도대체 이게 뭐라고 이렇게 굳 은결의 까지 필요한 것이었을까?

다 큰 어른이 그냥 순대국밥 사러 가는 거뿐인데 말이다

익숙하지 않은 행동이라서, 남들 눈을 신경 써서, 유난스럽다 생각돼서, 이 모든 것들이 다 뒤엉키는듯한 머릿속이었다.

그나마 코로나로 써야 하는 마스크가 내 얼굴의 반이상을 가려주니 조금은 덜 창피할 거라고 나를 달래며 갔던 그 2 동안의 길.. 20분 같던 그 길이 기억난다


5인가족이 먹을 3인분의 순대국밥을 담으려고 난 곰솥을 가지고 갔다

 



가게에 들어선 나는 내장국밥 포장을 주문했고, 노련한 사장님은

"거다 담아갈라고예?" 라며 시원한 목청으로 물어보셨고

난 삐줏삐줏 거리며

"ㄴ네.. 안될까요??"

라고 우물쭈물 거리며 냄비 뚜껑을 열며 건네드렸다.


" 와 안 되겠는가 주소~"(경상도 사투리)


아.. 되는군요.. 하하 저희 딸들이 순댓국을 좋아해서요 근데 순대 말고 내장국밥으로..

밥은.. 안 주시는 거죠.... 라며 나 혼자만 어색한 옹알이를 해대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국밥을 담아주시며 가지고 나오신 사장님은


"내 많이 줬다~ 진짜 마이 준거다~" 강조를 하시는데 한꺼번에 3인분을 담은 터라 사실 잘 모르겠고

감사합니다라고만 몇 번 연거푸 인사를 했다.

그런데 아차 싶은 순간!

국밥을 담을 냄비만 가져왔지, 부추와 새우젓 된장  깍두기 등을 담을

'용기'는 안 가져온 것이다

반쪽자리 "용기 내"가 돼버렸다. 모든 게 미숙한 나의 짧은 생각

늘 배달이 오면 다 담아져서 오니. 내가 그걸 간과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작은 플라스틱 배달용기가 생겼고 비닐이 생겼다


그래도 제일 큰 배달용기는 피할 수 있었다 가는 길은 그리 길게 느껴지는데

집으로 오는 길은 그냥 길이었다.

근데 이 뿌듯함은 뭐지? 내가 우리 집 막내 6살 아이를 칭찬해주었을 때 그 모습이 내게서 느껴졌다

정말 결혼하고 처음 시도해보는 '용기 내'가, 40이 넘은 어른을 이렇게 어깨 으쓱하게 만들거라 생각 못했는데

기분이 좀 새로웠다. 집에 와서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끓이는 동안

난 아이들에게 용기 내는 일에 대한 일장 연설을 했고

엄마는 이렇게 용기를 내면 플라스틱도 덜 쓸 수 있고, 지구는 보일러만 구하는 게 아니고 엄마도 지구를 구할 수 있다고, 그 이후 나는 아이들에게 지구를 구하는 엄마가 되는 길로 본격적 입성을 할 수 있었다.



가장 쉽고 많이 보편화된 텀블러생활은 늘 하고 있다





에필로그:)

남편에게 '용기 내'가 뭔지 알아?. 물어봤을 때

남편은 내게 "힘내라는 거잖아 날 무시하는 거야 "라며 농담 섞인 대답을 했어요

그래 이게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겠구나 싶었죠 저도 만약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남편과 같은 대답일 거예요  저도 조금씩 관심을 가지면서 훨씬 많은 사람들이 '용기 내'를 실천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내가 하고 있는 아주 작은 실천이 아이들에게 지금보다 깨끗한 지구를 줄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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