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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곱슬머리앤 Jan 27. 2022

네가 엄마의 잠옷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나에게는 노란색 수면 잠옷이 있다. 추위를 많이 타는 터라 여름만 빼면 거의 일 년 내내 입고 잘만큼 좋아하는 잠옷이다. 그런데 요즘 이 잠옷을 좋아하는 이가 하나 더 늘었다. 윤이가 유독 이 잠옷을 좋아한다. 잠옷을 입고 있을 때면 폭 파묻히듯 안기기 좋아하고 괜히 와서 비비적거리기도 한다. 보드라운 느낌이 좋아 그런가 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어느 날 남편으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만 마음이 찡해져 버리고 말았다.


"엄마가 일찍 출근하고 없으면 
저 잠옷을 만지작만지작거리면서 냄새를 맡아봐."


내게는 아직도 어렴풋이 젖내가 나는 것 같은 세 살 아이는 얼마 전부터 "냄새 맡아볼래."라는 말을 자주 한다.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반찬을 거절해야 할 때면 냄새 먼저 맡아보겠다며 사양하고 엄마 아빠는 매일 마시면서 자기는 절대로 주지 않는 커피의 맛이 궁금하면 냄새라도 맡아보겠다며 코를 들이민다. 이따금 엄마 아빠에게 코를 대고 킁킁거리면서 웃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가 이 순간을 어떤 냄새로 기억할까 궁금해진다.


향기는 보편적으로 대다수의 사람이 좋아할 만한 것들 뒤에 붙지만,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정서를 담아낼 때는 향기보다 냄새로 말하게 된다. 이를테면 엄마 냄새가 그렇다. 뭐라고 표현할 길은 없지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포근한 냄새, 때때로 아련하고 문득 그리운 냄새. 백 명의 사람에겐 백 가지의 엄마 냄새가 있다.


아침마다 눈꺼풀이 천근만근인 겨울 아침이면, 어른인 나도 이렇게 일어나기가 힘든데 세 살 아이는 오죽할까 싶어 곤히 자는 아이의 얼굴을 가만가만 쓰다듬어 본다. 품 안에 한번 꼭 안아 보고, 조금이라도 더 자라고 이불을 덮어 주고 괜히 엉덩이도 몇 번 토닥여 본다. 

어젯밤 자기 전에는 잠을 자니 마니 한 시간이 넘게 티격태격하다가 잠들어 놓고 아침이면 이렇게 한참을 질척이다가 지금이 몇 시더라? 화다닥 출근 준비를 하러 가기 일쑤다. 하지만 아무리 늦었어도 밤새 데워 둔 온기가 오래오래 식지 않도록 이불을 꼭꼭 여며 놓는 것만은 잊지 않는다. 


막 떠나려는 버스를 붙잡아 타고 가쁜 숨을 겨우 고르고 나서 집에 벗어 두고 온 노란 잠옷을 떠올린다. 오늘도 아이는 일찍 출근한 엄마 대신 노란 잠옷을 만지작거릴까. 밤새 이불을 덮어주고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준 건 모를 테니 이따금 서운하기도 할 테지. 


네가 엄마 잠옷을 만지작거릴 때 엄마도 네가 아주 많이 보고 싶어.

오늘 밤엔 소곤소곤 이렇게 속삭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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