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와 보니 밥상 위에 시베리아 벌판이 펼쳐져 있다. 윤이가 피자 위 페퍼로니만 골라 먹은 것이 사건의 발단, 피자 위에서 하나둘 자취를 감추는 페퍼로니와 함께 전개, 세 번째 페퍼로니를 집어 올린 순간, 페퍼로니만 골라 먹으면 안 된다고 엄하게 다그치는 아빠의 목소리와 함께 위기에 봉착한 것이었다.
아빠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애꿎은 포크만 만지작 거리는 윤이에게 왜 그러느냐고 엄마한테 말해 보라고 은밀하게 속삭였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한 어린이가 비련의 주인공 같은 얼굴을 하고 이렇게 말한다.
아빠가 나를 혼내서 마음이 한 개 뿌서진 것 같아.
짠하고도 귀엽지만, 지금 웃으면 어린이의 속상한 마음에 야속함을 더하게 된다. 큰 실책을 막기 위해 입술을 꼭 깨물고 엄한 아빠의 훈육을 말랑말랑하게 풀어서 나긋나긋하게 일러 주곤, 다시 상 앞에 앉은 아빠에게 넌지시 분위기 전환의 신호를 보내 본다.
"아빠야, 어떡하지? 윤이 마음이 한 개 뿌서진거 같대."
무슨 소리인가, 눈을 끔뻑이는 아빠에게도 나긋나긋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준다.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걸로 보아 결말은 해피엔딩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