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차려 줬더니만 맛이 없단다. 다른 때 같으면 배가 안 고픈가 보다, 굳이 먹이려 들지 않고 넘어갈 텐데 오늘은 챙겨 먹어야 할 감기약이 있다. 딱 한 숟가락만 먹어 보라고, 먹어 보고 안 먹고 싶으면 진짜 안 먹어도 된다고 제안해 보았으나 퇴짜. 그럼 냄새만 맡아보라고 맛있는 냄새가 나면 먹고 싶어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급기야는 뒷걸음질을 친다. 퇴근하고 여태 엉덩이 한번 못 붙이고 차려 놓은 저녁밥이거늘 제발 좀 먹어 달라고 어르고 달래기까지 해야 하다니 울컥 화가 난다.
“엄마 진짜 속상해. 엄마는 열심히 저녁밥을 만들었는데 먹어 보지도 않고 맛없다고 하고. “
진정성 있게 호소해 보았으나 여전히 입은 꾹 닫은 채 눈은 티브이에 고정. 치사하지만 결국은 리모컨을 손에 든다. 밥을 먹지 않으면 오늘 티브이는 못 보는 거라고 엄포를 놓자 그제야 꾸역꾸역 한 숟가락을 입에 넣는 표정이라니.
야속하고 화가 나지만 그래, 진짜 먹기 싫을 수도 있지. 진짜 맛이 없을 수도 있지 하면서 더 이상 다그치지 말자고 마음을 다스리느라 내뱉지 못한 잔소리를 반찬삼아 애꿎은 밥만 꼭꼭 씹고 있는데 도록도록 눈동자를 굴리며 엄마 얼굴을 힐끔거리던 아이가 머뭇머뭇 이렇게 말한다.
많이 맛없지 않고 쪼끔만 맛없어
제 딴에는 엄마를 속상하게 만들어 미안한 마음을 표현한 것일 텐데, 웃음이 나면서도 쪼끔 서글프다. 그러니까 되게 맛이 없긴 했나 보구나. 엄마가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