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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곱슬머리앤 Mar 21. 2022

대체로 힘들고 때때로 눈부신

   아직 세 돌이 채 안 된 영유아는 요즘 별 것 아닌 일로 신경질을 냈다가 돌아서면 반달눈을 하고 와서는 “엄마, 사이좋게 지내쟈~” 하기 일쑤다. 자기가 귀엽다는 걸 깨달은 세 살은 불리하면 코를 찡끗거리며 치트키를 쓴다. 근엄한 표정으로 훈육이 웃음 참기로 변질되는 것은 시간문제. 매번 대책 없이 당하다 보면 가끔은 내가 생각해도 좀 어처구니가 없다. 대체 이 아이는 누굴 닮아 이렇게 냉탕 온탕인가 원망을 해볼라치면 이 녀석을 구성하고 있는 지분의 상당한 부분이 켕기기 때문에 웬만한 일은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하면서 실눈으로 어물쩍 넘기게 된다.


   소싯적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섭렵했지만, 육아는 일로 치면 식사, 수면, 휴일도 제대로 보장 안 되는 24시간 근무에다 말도 안 통하고 상식은 더 안 통하는 고객님을 받드는 감정 노동인 듯하다.  여기까지 말하면 내가 되게 불행하게 느껴져서 가급적 입 밖으로 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저만큼 적확한 예시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다. 이 와중에 회사까지 다니느라 낮에는 출근, 밤에는 야근으로 자면서도 5분 대기조로 24시간 풀가동 중인데 내가 생각해도 여태 박차고 나가지 않은 게 용하다. 

  

 이렇게나 불리한 근무 조건에도 불구하고 하면 할수록 이 일에 사사건건 진심인 나를 발견한다. 수십, 수백 장의 똑같은 사진이 한 장 한 장 달라 보여 지울 수가 없고,  뭔가 갖고 싶다는 말을 들으면 없는 시간을 쪼개 발품을 팔아 대령하며, 밤마다 팔베개를 해달라고 하셔서 팔 하나를 통째로 내어 드리고, 문득 붕어빵이 먹고 싶다고 하시면 온 동네를 뒤져서라도 구해 퇴근길에 고이 품고 간다. 생각해 보면 연애도 이렇게 열렬히 해 본 적이 없는데.


  간혹 누군가는 사서 고생이라 고개를 절레절레 젓지만, 덕질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이해가 될까. 최애가 나를 제일 좋아하는 덕질. 다만 최애를 내가 직접 키워야 하는 덕질. 시시때때로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며 때로는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로 행복할 때가 있는, 한평생 탈덕이란 있을 수 없는 그런 일. 대체로 힘들고 때때로 눈부신 일.


  언젠가는 한 칸만 더, 진짜 딱 한 칸만 더 가보자, 다짐하는 구름다리를 건넜고, 또 언젠가는 탕! 하는 출발 신호에 엉겁결에 달려 나가 우르르 몰려다니며 같은 운동장을 뱅글뱅글 돌았다면 지금은 불행과 행복을 양쪽 끝에 태운 시소 한가운데 중심을 잡고 앉아 있는 것 같다. 


오늘은 행복 쪽에 무게가 실리고 내일은 불행 쪽에 무언가 얹힐지 모르지만, 꾸준히 행복을 좀 더 편애해 본다. 가능한 행복 쪽으로 기울어 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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