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맹뿌도 살아 있다》-11

[11화]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by 달구언니





1. 고과, 그게 뭐라고.
회사 생활 10년 차,

요즘은 진짜 ‘고과’가 다가 아닌 걸 알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고과에 흔들린다.

우리 회사는 연공서열이 중요한 곳이다.
예전부터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영향을 아예 안 받긴 어려운.

항상 나보다 고호봉자들과 함께 근무했고
지점 막내 롤이었기 때문에
고과가 좋지 않을 거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내가 항상 최선을 다했고
성실하게 근무해 왔지만 실적을 잘하는 것도,
베테랑 선배들처럼 능수능란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궁금하지도 걱정되지도 않았다.
그냥 으레 좋지 않겠지. 나도 알아.
정도로 생각할 뿐.

그런데 동기가 승진한 순간부터
갑자기 헉…!
나 마냥 그렇게 맘 편히 있을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나를 조급하게 만든 것 같다.
아직 대상조차 안 된다는,

한참 남았다는 생각을 하던 나에게
경고 메시지가 뜬 것 같았다.

야, 정신 차려.

언제까지 남 뒤치다꺼리만 하고

고과도 깔아주고 살 거야????




2. 회사를 미워하고, 나를 의심하고,


그리고 올해,

고과 등급이 공개됐다. 나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상황상

마냥 좋게 받긴 어려울 거 알고 있었다.

정말 열심히 했고, 사실 그보다 더 좋은 결과를
조금은 기대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뭐, 나도 사람이니까.

부장님이 “◼︎ 줄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라고 했다.
나보다 호봉 높은 사람이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고생 많이 했고, 잘하고 있는 거 알고 있다고.
그 말을 듣고 그냥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다, 더 열심히 하겠다.”

속으로는 생각했다.
고생은 고생대로 했고, 결국 고과는...
나도 사람이니까.

물론 각자의 위치에 있는

평가자들의 권한이라는 건 안다.
더욱이 내게 그 말을 건넨 것도,
신경 써서 위로해 주려는 마음이라는 걸 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도 그랬을 수 있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건 그거고.

그 결과를 본 순간부터
내 안에서는 계속 질문이 생겼다.




3.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일까?
지금껏 그 어떤 프로젝트도 미룬 적 없고
누가 하든 말든,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했다.
눈에 띄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버텨왔는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스스로 괜찮다고 느끼지 못하면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릴 수밖에 없구나.’

내가 생각한 만큼, 내가 그렇게 잘한 건 아닌 걸까?
나 말고도 당연히 더 고생하는 분들이 많긴 하지.
그래도… 나도 고생 안 한 건 아닌데.




4. 고과는 다가 아니다.
고과 때문에만 일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니다.
내 일을, 내가 잘하고 싶었다.

나한테 일을 주면 안심할 수 있길 바랐다.
아무도 모르더라도, 나 스스로는 아니까.
내가 최선을 다해서 알아봤는지
내가 진심을 다해서 추진해 봤는지
정말 환경이 따라주지 않았던 게 맞는지.

하지만 그걸 부정하는 나조차도
여전히 그 값에 휘둘린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묻는다.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나는 부서에 필요한 사람인가?
내가 평가자라면 나에게 베스트 점수를 줄 텐가?

아직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매일 이 질문을 할 수 있는 나 자신은
조금 괜찮아지고 있다고 믿고 싶다.




5. 사실 이 질문은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가 아니라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믿을 만한 후배가 되고 싶어서,
“아, 00이 참 일 잘한다” 한마디가 듣고 싶어서.

일을 미루지 않고,
책임을 나누려 하지 않고,
문제는 해결해 보자는 마음으로.

말을 예쁘게 하려고 노력하고,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내 마음은 점점 고요하게 무너졌다.

그러다 문득,
그 모든 걸 잘 해내고도
이번에 승진은 힘들겠네”는 걸 인식했을 때,
내 안의 어떤 게 툭,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영영 못 하는 게 아니라는 거 안다. 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묻고, 또 묻는다.

“나는 지금, 괜찮은 사람인가?”
“지금 이 선택이 나를 지키는 길이 맞는 걸까?”




다음 편:

[12화] 회사에서 튀지 않고 오래가는 법, 나의 생존전략

작가의 이전글《이맹뿌도 살아 있다》-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