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맹뿌도 살아 있다》-13

[13화] 내가 왜 이 직업을 선택했냐면

by 달구언니



1. 스무 살. 나의 첫 사회생활.


스무 살, 신입생. 공연장 알바를 하고 싶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간지 나 보여서.

가족이 이미 공연장에서 일하고 있었고

나도 해보고 싶었다.

그땐 영화관 알바가 유행이었는데,

공연장은 좀 더 있어 보였거든.

학교 근처 대극장이 마침 사람을 뽑고 있었다.

아르바이트인데도 나름 빡세게(?)

하우스매니저를 만나 면접도 봤다.

합격했다.


내 주 업무는 표를 검사하고, 자리를 안내하는 거였다.

보통 티켓 확인을 많이 했다.

"공연 곧 시작합니다~ 입장 서둘러 주세요~"

지금도 멘트가 입에 붙어 있다.

늦게 오는 관객은 꼭 있다.

공연 중간에 자리로 데려가야 한다.

몇 번 없는 정해진 군무 타이밍에 맞춰야 했다.

늦은 사람 모아서, 빠르게, 정확하게.

팀을 나눠 동선 조율. 계획대로 되는 건 거의 없었다.

그 순간마다 즉석에서 판단하고 움직였다.

공연은 매일 다르고, 관객도 매일 달랐다.

근데 그게 나랑 잘 맞았다. 생각보다.

그리고 주말 없이 공연일정에 맞춰서

근무하면서 또 한 가지 기준이 생겼다.


'남들 쉴 때는 나도 쉬어야겠다.'

나는 공연장 근무가 좋았다.

근데 모든 연휴에 일했다.

종 특성상 그게 당연했다.


매년 돌아오는,

악명 높은 크리스마스 공연이 있었다.

근무가 힘들기로 유명한 가족 공연.

근무를 끝내고 나면 연말기분? 안 났다.

그때 생각했다. 나도 남들 쉴 때 쉬고 싶다.

이걸 업으로 삼으면 안 되겠구나.

좋아하는 건, 그냥 좋아하는 걸로 남겨야겠다.




2. 도서관. 책 정리 아르바이트.


불규칙한 스케줄에 질렸다.

그러다 찾은 도서관 아르바이트.

하는 일은 청구기호에 맞춰 책을 제자리에 꽂는 일.

단순한데 은근히 힘이 들기도 하는 일이었다.

큰 도서관이라 한 층에 두세 명씩 조를 짜서 움직였다.

사서 공무원 준비생도 있고, 은퇴한 전직 사서도 있었다. 연령대도 다양했고, 분위기도 좋았다.

전직 사서님이랑 일할 땐 노하우를 전수해 주셨다.

40분은 쉬고, 20분 몰아서 일했다.

괜히 한 권씩 계속 꽂다가는 무릎이 나간다고. (ㅋㅋ)

단순한 일이었다. 근데 노하우는 필요했다.

그리고 느꼈다. 노련함은 디테일에서 나온다는 걸.

그때 알았다.

진상은 도서관에도 있었다.

사람이 있는 곳엔 어디든 있다.

그리고 기록이 중요하다는 것도.

기억은 편집되지만, 기록은 안 그러니까.



3. 은행원 생활 맛보기 한 스푼.


도서관에 매주 가족들과 오던 아저씨가 있었다.

매너 좋고, 말투도 정중하고, 인사도 항상 해주셨다.

어느 날, 다른 일 해볼 생각 있냐고 물어보셨다.

알고 보니, 근처 은행 지점 총무팀장이셨다.

"계약직 자리가 곧 비는데, 일해볼래요?"

그때가 3학년. 참 애매하고 걱정이 많은 시기였다. 친구들은 휴학하고 워홀, 공무원 준비, 뭐라도 했다.


22살의 나는

그냥 졸업하자니 바로 취업을 못할까 봐

공백기가 생기는 게 무섭고,

휴학을 하자니 딱히 할 것도 없는데 쉬기가 애매했다.


희망 진로는 은행을 생각 중이었다.

경험을 중요시하던 시기라 인턴도 알아봤지만,

인턴이 금(gold) 턴이었다.

인턴을 하려는데 경력을 적으란다.

그 경력을 쌓고 싶어서 인턴을 하려는 건데.

말이 되나. 아 신입은 경력을 어디서 쌓냐고~



이 제안은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은행이 나랑 맞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럼 아닌 거고. 괜찮으면 내 길이 될 수도 있으니까.

엄마, 아빠를 설득해서 휴학을 했다.

총무 계약직으로 약 9개월 근무.

지점 살림을 책임지는 일을 돕는 일이었다.

영수증 정리, 행사 준비, 물품 구입, 간식 세팅,

커피 내리기까지.

말 그대로 지점의 '살림꾼'이었다.

그때 근무하며 겪은 일들은,

생각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경험이 되었다.

은행원이 되고 나서 오버랩되던 순간들이 있다.


기로 번호표를 만들던 일, 보이스피싱 사건 등등..


수기 번호표는..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준비도 방향도 정해지지 않은 정부 정책 내용이

마치 당장 은행에 뛰어가지 않으면

당신만! 엄청난! 정부 혜택을 못 받을 것처럼

기사로 공개되었던 사건이다.

정말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나는 순번발행기가 없던 2층 창구에서

손으로 한 땀 한 땀 번호표를 만들어 드려야 했고,

몇 시간씩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차를 내어주었다.

이 경험은.. 슬프게도 입행 후에 몇 번 더 반복됐다.(^^)


어떤 날엔 딱 봐도 보이스피싱인,

눈감고 코베일 뻔하신 할머니를 도왔던 날도 있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눈치챌만한 엉성한 놈이긴 했지만,

그날은 내가 다행히 근처 자리에 있었고,

알아채고 창구 계장님에게 전할 수 있었다.

그렇게 9개월을 보내고, 복학했다. 경험이 됐다.

사람을 보는 눈도, 일의 흐름을 보는 눈도 생겼다.





다음 편:

[14화] 자율복이라더니 나 혼자만 니트 입고 왔다고요

작가의 이전글《이맹뿌도 살아 있다》-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