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나의 일하는 방식은 결국, 나를 닮았다
‘그 정도면 됐잖아’가 안 되는 사람
1. 정시퇴근을 하고 싶다.
당연히. 너무나도.
그런데 나갈 수가 없다.
누가 붙잡는 것도 아닌데
그냥 발이 안 떨어진다.
“이건 내일까지 해도 돼요.”
라는 말을 들으면
“그럼 내일까지 해야겠다”가 아니라
‘그럼 오늘 안에 끝내야 내일 확인가능!’로 받아들인다.
그게 꼭 자랑은 아니다.
요즘은 오히려,
그 성격 때문에 내가 자꾸 지친다는 걸 자주 느낀다.
2. 대충이 안 되는 성격… 이라기보단.
사실 나는
새해맞이 다이어리 첫 장의 오타 한 개를
못 참고 종이를 찢는, 새로 사버리는 사람이다.
근데 사실 형식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다.
정말 화가 나는 건 따로 있다.
“이 업무 왜 이렇게 했어요?”
라는 질문에
“전부터 이렇게 했는데요?”
라는 대답이 돌아올 때.
단전에서부터 화가 올라온다.
그럼 니가 사고 치면,
전에 했던 사람한테 가서 책임지라고 할 거야?
법은 바뀌고,
규정은 수정되고,
업무 매뉴얼은 매해 업데이트된다.
나는 항상 내 눈으로 규정을 확인하고,
문제없음을 판단해서,
전결권자에게 확인받고,
그다음에 업무를 처리한다.
그렇게 해도 사고가 나면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한 게 은행이다.
그게 내가 영업점에서 배운 생존 방식이었다.
대충이 안 되는 성격… 이라기보단,
무책임을 못 참는 성격인 걸로.
3. 근데, 본점은 달랐다
영업점에서는 정해진 규정이 있다.
그 규정을 정확히 지키는 게 ‘잘하는 일’이다.
근데 본점은 다르다.
정답이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정답을 만드는 일이다.
규정을 새로 만들고,
법률 검토를 받고,
기존 사례를 해체하고,
형평성을 따지고,
예외를 확인하고,
유관부서를 설득하고,
우리 부서의 니즈에 맞게 조율하는 것.
내가 확인하고 싶은 내용에
정답지가 없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4. 결국, 나의 일하는 방식은 나를 닮았다
나는 까라면 까긴 깐다.
근데 그 와중에도
의미를 찾고, 이유를 찾는 사람이다.
왜 해야 하는지.
하면 뭐가 좋은지.
이게 영업점에서 편해질까?
그럼 해야지.
은행의 근본은 영업점이니까.
(물론 내 생각이다. 당연함. 내 글이니까.)
본점은 영업점이 더 잘 되도록
영업점에서 더 편하게 영업하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곳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거기까지 닿기를 바란다.
어차피 나도 곧 돌아갈 테니까.
그래서 나는
비슷한 규정을 찾아보고,
유관부서에 확인하고,
정답이 없으면 만들고,
다른 부서와 부딪혀도 다시 설득하고,
내 손을 떠난 뒤까지도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일한다.
이런 나를 ‘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고생 사서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말도 맞다.
근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내가 한 일 앞에서 부끄러워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가 만든 매뉴얼에 줄을 긋는다.
이맹뿌도 살아 있고,
나도 살아 있는 방식으로.
다음 편: [10화] 내가 힘들 때, 나를 지켜준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