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것들
“나 장비 샀어.” 남편의 갑작스런 고백에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무슨 돈으로?” 얼마 전부터 남편이 (내 기준에서는) 고가의 인테리어 장비를 하나 장만하고 싶다고 말해왔다. “밀린 임금 다 받아오면.”이라고 대답은 했는데, 남편에겐 사실상 거절이나 다름없었다. 그 밀린 임금이라는 것이 두어 달에 한번 찔끔찔끔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고 싶다’도 아니고 ‘샀다’라니. 허허 웃고만 있는 남편에게 똑같은 질문을 다시 했다. 어쩌다가 오랫동안 안 쓰던 은행계좌를 조회해 봤고, 결혼 전에 일하면서 모아뒀던 돈을 발견했다는 거였다. 명백히, 온전히 남편의 돈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나 용돈 조금이라도 주지..”라고 중얼거렸으나 의미 없이 허공에 떠다닐 뿐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저녁상을 치우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이 서프라이즈 선물이 있다며 찾아보라는 거였다. 우리 부부의 용돈은 전체 생활비에서 아주 적은 비율을 차지한다. 그래서 서로에게 선물할 일이 있으면, 공동자금으로 사는 걸 허락하는 식이었다. 그렇다 보니 ‘서프라이즈 선물’이라는 단어가 장난처럼 느껴졌다. 내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남편이 거실 한쪽에 숨겨둔 작고, 네모나고, 하얀 상자를 꺼낸다. "자기 이거 써."라는 말과 함께.
그렇다. 그것은 바로 에어팟이었다. 남편이 쓰던 에어팟이 아니고 완전 새 거. 이번에도 무슨 돈으로 샀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은 장비를 사고 남은 돈으로 샀다고 답했다. 에어팟이 한두 푼도 아닐 텐데, 나는 이어폰을 그렇게 자주 사용하지도 않는데,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다녔지만 남편에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감사 표현을 했다. 사실 내 손에 에어팟이 놓여있는 모습이 감격스러웠고, 음질은 감동이었다. 남편이 쓰다가 준 한쪽만 연결되는 무선 이어폰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에어팟이 갖고 싶었나 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큰돈을 한꺼번에 쓴 일이 거의 없었다. 오래 사용한 침실 매트가 푹 꺼져서 허리가 아플 지경이 되자 샀던 매트리스 말고는. 들떠있는 내 모습을 보곤, 남편이 가끔 이렇게 선물을 해야 할 필요도 있겠다고 말한다. 선물을 받은 지 2주가 지난 지금도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사용할 때마다 기분이 좋다.
나는 우리 삶에 생존만 있는 게 아니라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 깃드는 게 좋았다. 때론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밟고 건너야만 하는 시절도 있는 법이니까. (김애란, 「잊기 좋은 이름」, 열림원, 2019)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물건이 주는 기쁨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지만, 때론 ‘반짝이는 것’들을 곁에 두는 것도 필요하다고. 에어팟을 귀에 꽂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혼자 카페로 가는 길에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