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고마워
아인이가 많이도 피곤했던 날이었다. 어린이집에서 낮잠도 안 자고, 하원 후에 친구들과 놀이터까지 다녀왔던 탓이다. 그런 날엔 저녁식사 때부터 취침 전까지 짜증을 많이 낸다. 게다가 이틀에 한번 하는 목욕까지 겹치면 난관이 예상된다. 주로 목욕은 남편이 시키는데, 그날은 아인이가 그림 그리기를 오래 하고 싶어 해서 물놀이를 생략하고 샤워와 머리 감기만 하기로 했다. 그렇게 아빠를 따라 욕실로 들어간 아인이. 갑자기 물놀이를 하고 싶다고 울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져다 달라고 울고, 머리 감는데 눈에 물이 들어간다고 울고, 결국 지친 남편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진다. 밖에서 설거지를 하던 나는 아인이의 울음소리가 몹시 신경 쓰였지만, 굳이 가보지는 않기로 했다. 괜히 가봤다가 남편한테 잔소리만 할 것 같아서였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아인이는 눈이 벌게져있다. 아인이는 아빠랑 그런 식으로 실랑이를 하면 꼭 나를 찾는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나한테 안겨서 하소연을 시작한 아인이. 양치를 하고 물로 입을 헹구는데 아빠가 물을 입에 콱 넣었다는 거다. “콱”을 말할 때는 폴짝 뛰기까지. 목욕 뒷정리를 하고 나온 남편의 모습도 초췌하다.
원래는 자기 전에 다 같이 기도한 뒤, 남편과 물을 마시고 방으로 들어오는데 아인이는 그 모든 걸 거부했다. 웬만하면 남편은 억지로라도 같이 하자고 하는데, 지칠 대로 지친 건지 그러라고 놔두고 거실로 나가버린다. 아인이와 자기 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너무 피곤해서 울었냐고, 피곤해도 그렇게 짜증 내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아인이는 대충 알아들은 듯했다.
다음날, 남편 없는 토요일이었다. 점심으로 떡국을 해 먹었는데 맛있었는지 아빠 꺼도 남겨놨냐고 묻는다. 간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 그러다 남편에게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아인이는 남편에게 “아빠 어제 미안했어.” 한다. 마치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남편도 웃으면서 “아빠도 미안해.”라고 한다. 내 말 때문인지 시간이 지나서 감정이 진정된 건지. 이유야 어찌 됐든 아인이가 먼저 사과하는 모습이 기특했다. 사실, 남편도 그렇다. 나는 남편과 한번 싸우면 감정이 쉽게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다음날까지 툴툴대는데,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언제 싸웠냐는 듯 다정하게 군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생각해보니 내가 잘못한 거 같다고 차분하게 이야기해준다. 따지고 보면 서로 잘못한 일이었을 텐데. 아인이가 아빠의 그런 점을 닮았나 보다. 고마운 나의 황씨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