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은 연희동. 연희1구역으로 지정된 곳 바로 뒷골목에 우리 빌라가 있다. 내년부터(미정) 공사가 시작될 거라고 한다. 우리 가족이 이 동네로 이사 온 건 4년 전인데, 재개발 이야기가 나온 건 10년도 더 된 일이라고 한다. 나는 남편에게 왜 하필 지금이야. 공사 소음, 먼지 어떻게 견뎌. 하는 정도로 내 불편함을 토로했다.
아이와 자주 가는 집 앞 놀이터에는 정자가 있는데, 그곳은 동네 할머니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다. 날씨와 상관없이 그곳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나물을 다듬거나, 먹거리를 나눠먹곤 하신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할머니들 사이에 잘 차려입은 할아버지가 한 분이 앉아있었다. 할아버지는 매번 같은 사람은 아니었는데, 주로 할머니들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인이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한 할아버지가 다가와 재개발 조합장 선거를 대비한 홍보용 명함을 나에게 건넸다. 대충 보고 주머니에 쑤셔 넣는데, 어떤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개발되면 우리는 어디서 살아!”
놀이터가 잠시 공사 중이던 작년 가을, 딱히 갈 곳이 없어진 할머니들은 다른 정자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공사가 끝나자마자 다시 놀이터 정자로 돌아오셨다. 이제 철거가 시작되면, 할머니들은 어디로 가셔야 할까. 내게 누군가를 함부로 불쌍히 여길 자격은 없다. 다만 이 상황이 씁쓸할 뿐이다.
들여다보는 사람 하나 없이
이별은 발밑에 와 있는데
70년대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아무 의심 없이 내리섰던
지층은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감나무는 이별을 모른다
단지 이 겨울 지나며
이 도시 어딘가 숨어 사는 텃새들
마지막 사랑처럼 날아와 입 맞출
주황색 감 가득 매단 채
(출처: 창작과 비평 2019 겨울호, 윤재철 <방배 6구역> 중에서)
연희1구역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다. ‘들여다보는 사람 하나 없’어도 ‘이별이 발밑에 와 있’어도, 그들 각자의 ‘주황색 감’을 맺으면서. 이곳은 이곳의 사람들이 ‘아무 의심 없이 내려섰던’ 곳이었기에, 나는 최신 아파트에 온갖 편의시설이 들어서도 그 할머니의 말이 두고두고 생각 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