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외감이라는 감정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가끔은 내가 저 구석에 처박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소외감을 억지로 찾아내려는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한다. 꽤 오래전부터 이런 모습을 바꿔보고자 나름의 노력들을 해왔지만, 호르몬의 변화가 있는 시기에는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한 고비를 맞이한다.
아인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보조교사로 일한 지 3~4개월쯤 됐을 때 일이다. 모두 함께 근처 공원으로 소풍을 떠났다. 점심을 먹은 뒤,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는 시간이 있었고, 아인이는 친구 A와 열매를 주우러 갔다. 잠시 후, 저 멀리 아인이와 A가 모자에 이것저것 담아서 오는 모습이 보였고, 그들에게 B와 C가 다가갔다. 아마도 뭘 주워왔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잠시 다른 일을 신경 쓰다가 귀에 익은 울음소리를 들었다. 돌아보니 아인이가 텅 빈 모자를 들고 울고 있었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아인이와 A에게 다가간 B와 C가 열매를 A의 모자에 다 합치자고 했고, 아인이는 얼떨결에 그러겠다고 했다. 하지만 주고 나니 너무 속상했던 거였다. 아인이를 달래려고 A의 모자에 있던 열매를 무작위로 집어 아인이에게 나눠주는데, B가 몇몇 열매를 가리키며 이건 아인이가 주운 게 아니라고 참견을 했다. 애써 감정을 누르고 B에게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때, 상황을 대충 눈치챈 다른 선생님이 다가와 여전히 울고 있는 아인이와 그저 당황스러운 A를 따로 데리고 갔고, 금새 상황이 정리되었다. 나는 그 타이밍에 선생님이 와 주신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에서 끝나면 좋았을 텐데. 그 이후에도 아인이는 A와 같이 놀고 싶어 했지만, A곁에는 B가 있었다. B는 A에게 아인이와 놀지 말자는 제스처를 취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서 있었지만 어딘가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웃으며 어울린다. 아인이는 B를 미워하지 않았고, B 역시 아인이와 잘 어울려 논다. 나 역시 B가 불편한 건 아니었다. 아이들끼리 놀다 보면 그런 일도 종종 일어나니까 그때마다 잘 타이르고 넘어가면 될 일. 그렇게 특별한 일도, 심각하게 생각할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한동안 그 일 때문에 마음이 아팠던 이유는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8살에 처음 만난 동네 친구 D. 초등학교 내내 D의 시녀노릇을 하면서도 저렇게 예쁘고, 재미있고, 인기 많은 친구가 나의 단짝이라는 게 좋았다. 중학교 때는 D와의 관계가 어느 정도 동등해지는 듯했으나 고등학교 때 다시 같은 반이 되면서 시련을 맞이한다. 나와 D를 포함한 6명이 함께 어울렸는데, D가 그 친구들과 나 사이에서 이간질을 하는 바람에 나만 그 무리에서 멀어진 것이다. 쉬는 시간이 오는 게 두려웠고, 짝을 지어 활동해야 하는 수업시간이 부담스러웠다. 다행히 그런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준 친구가 있었지만, 그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늘 자신이 없었다.
25살,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일이다. 신기하게도 동료들이 거의 내 또래였고, 마음도 잘 맞았다. 퇴근 후에도 함께 어울렸고, 금요일에는 주말에 만나서 뭘 할지 정하느라 바빴다. 서울에 올라와 처음 제대로 사귄 친구들이었다. 덕분에 외롭지 않았고, 매일이 즐거웠다. 나보다 한 살이 많았던 E는 외모도, 성격도 완벽해 보였다. 모두들 E를 좋아했기 때문에 굳이 나서지 않아도 E를 중심으로 모임이 이뤄졌다. 나 역시 E를 좋아했고, 많이 의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E가 나를 외면했다. 어떤 이유인지 알 수가 없었다. 따로 불러서 물어보기도 하고, 울면서 무작정 사과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E는 나와의 대화를 거부했고, 그렇게 E가 먼저 퇴사할 때까지 서로 모른 척 지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인생 최고의 소외감을 느꼈다.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어울릴 친구가 없었다. 심지어 회식 때도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어울리던 동료들이 모두 E의 주변에서 행복한 얼굴로 웃고 있다. 몇몇 동료가 나를 챙겨주긴 했지만, 대부분은 E와 다시 잘 이야기해보라는 의미 없는 말만 던질 뿐이었다.
마치 아인이가 어린 내 모습 같았다. 아인이가 D의 등만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 같았고, 아인이가 E의 차가운 눈빛을 보며 울먹이는 내 모습 같았다. 아인이가 겪은 일이 나의 상처와 관련되어 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보다 훌쩍 자란 아인이가 더 깊은 소외감과 마주한다면 나는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까.
가끔은 그때, 혼자 버려진 것만 같던 시간 속으로 들어가곤 한다. 그럴 때마다 애써 기억하려 한다. 그럼에도 변함없이 D가 있는 곳으로 등교를 하고, E가 있는 곳으로 출근을 했던 내 모습을. 하지만 그런 기억도 그때 내가 도망쳤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으로 마무리된다. 언젠가는 소외감이 나에게 준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날이 올까. 그때까지 조금 더 무뎌지기를. 조금 더 단단해지기를. 그렇게 나의 상처들에게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