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이는 30개월 무렵,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임신기간을 포함해 거의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육아에 전념했던 나는 갑작스런 여유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첫 등원을 앞두고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도 없었다. 한 달 정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다. 그러다 남편의 임금이 체불되는 일이 있었고, 마음이 다급해진 나는 급하게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어린이집 보조교사다.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강아지마냥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는 편이다. 어른들과의 관계에선 누가 내 감정을 받아주지 않거나 반응이 내 기대에 못 미치면 혼자 속상해하기도 하는데, 아이들에겐 감정을 퍼부어도 상처 받을 일이 없다. 꼭 껴안아주고, 매일 예쁘다고 말해주고, 속상한 마음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일이 지치지 않는다. 간혹 내 표현을 거절하기도 하는데, 껴안을 때 내 품에서 얼른 빠져나가거나, 나의 질문에 “아니야.”라고 답하는 수준이라 아무렇지 않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 나오는 내 감정을 모조리 쏟아부어도 괜찮은 상대가 많아서 너무나 좋다.
근무 중 잠시 간식을 사기 위해 나왔다 들어가는 길. 문득 예전 회사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그곳에서는 외근을 나갔다가 들어갈 때 발걸음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선 얼른 가서 아이들의 말 한마디라도 더 듣고, 전담선생님이 하고 있는 일 조금이라도 덜어줘야지 하는 생각뿐이다. 이런 마음이 드는 건 딱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전담선생님들이 나를 신뢰해 주고 있다는 것. 아이들 앞에서 내가 선생님인 걸 인정해주고, 나를 인격적으로 대해준다. 이전 회사에선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 직장이라니. 너무나 행복하다.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자 어린이집은 다시 긴급보육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보조교사인 나는 자연스레 일을 쉬게 되었다. 지난여름에도 긴급보육으로 일을 쉬어야 했는데, 그 당시엔 돈을 벌 수 없다는 것과 온종일 육아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지쳤던 기억이 난다. 기분 전환 겸 한적한 공원에 나들이를 간 적이 있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곳에, 이렇게 좋은 날씨에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 나왔으면 참 좋았겠다고. 누구는 벌레를 잡으러 다녔겠지, 누구는 열매를 주우러 다녔겠지, 또 누구는 여기저기 뛰어다녔겠지. 하고 혼자 상상을 하기도 했다. 다시 일을 쉬고 있으니 아이들 생각이 많이 난다. 긴급보육 중에도 출근을 한 날이 있긴 했는데, 등원 아동수가 적으니 평소보다 일은 수월했다. 하지만 일은 고되더라도 북적북적한 쪽이 더 좋다.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여러모로 나에게 잘 맞는 일이었다. 아인이를 낳기 전에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아이들을 좋아하긴 했지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많이도 힘들었다. 하지만 아인이를 낳고 기르다 보니 아인이와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게 되었다. 나만의 일을 할 수 없었던 3년의 시간은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준비기간이 된 셈이다. 그 모든 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토록 얻고 싶었던 안정감.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지만 일단은 충분히 느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