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걷자
하루하루 일을 구해서 나가던 남편은 황당한 사람을 만났다. 일당을 당일에 지급해주기로 했는데, 입금이 되지 않아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그랬더니 자꾸 보챌 거면 현장에 와서 잘못한 거 보수하고 받아가라고, 곧 입금할 테니 기다리라는 답장이 왔다. 남편은 몹시 기분이 상한 듯했다. 그 와중에 반장과 헤어지고 일을 했던 거래처에서 임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는 상황까지 더해졌다. 왜 자꾸만 일을 하고, 돈을 달라고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는 걸까.
남편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냐고, 나는 이런 불안정한 삶이 너무 두렵고 싫다고. 하지만 남편은 직업을 바꿀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에게 이 일은 힘들기도 하지만 계속 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다. ‘지금 네가 하고 싶은 일이 우선이 되어야 될 때가 아니야. 당장 먹고 살 돈이 없다고!’ 라고 생각했지만, 쏘아붙일 힘이 나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껏 남편은 잘 해왔고, 이제 처음 하나의 산을 넘는 중이니까.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주 2일에서 주 3일로 시간이 늘어났다. 한 달에 내가 받을 급여가 어느 정도일지 계산을 해보고는 생각보다 돈이 얼마 되지 않아 상심했는데, 하루 더 일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여러모로 나에게 맞는 일자리였다. 그렇게 대단한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인간관계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책을 보거나 글을 쓸 수도 있었다. 이런 내 일상이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던 차에 사장님에게 문자 한 통을 받았다. 편의점을 대신 관리해 줄 사람이 구했으니 12월까지만 일 해달라고.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가기 위해 부랴부랴 집을 나서던 참이었다. 차라리 정신없는 틈에 이 문자를 받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길까. 나는 지금 돈을 벌어야 하는데, 글도 쓰고 싶은데, 그래서 이 곳이 참 좋았는데, 왜 내 일상이 자꾸만 흔들릴까. 며칠 그런 생각들을 하던 중 또 사장님에게 문자가 왔다. 편의점을 맡아주기로 했던 사람이 갑자기 못하게 됐다고, 그러니 예전처럼 다시 일해달라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꼴이 참 우습다고 느끼기도 전에, 그저 일단은 다행이라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래전, 엄마와 함께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짐이 꽤 무거워서 내가 다 들겠다고 우겼지만 엄마는 한사코 거절하면서 말했다. "나는 면역이 돼서 괜찮다."라고. 이토록 무거운 시간들이 지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 보면 그때의 일이 떠오른다. 엄마에게 그 짐들이 가볍게 느껴진 건 아닐 거다. 무겁지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누군가에게 떠맡길 수 없다는 걸 아니까. 어쩌면 나는 지금과 같은 문제를 만났을 때, 또 불안해하고 흔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쓰러져 있는 시간이 지금보다는 짧기를, 한숨을 쉬는 순간들도 지금보다는 적기를. 그리고 언젠가는 다가오는 것들 사이를 묵묵히 잘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