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것들. 3편

묵묵히 걷자

by 이다래

하루하루 일을 구해서 나가던 남편은 황당한 사람을 만났다. 일당을 당일에 지급해주기로 했는데, 입금이 되지 않아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그랬더니 자꾸 보챌 거면 현장에 와서 잘못한 거 보수하고 받아가라고, 곧 입금할 테니 기다리라는 답장이 왔다. 남편은 몹시 기분이 상한 듯했다. 그 와중에 반장과 헤어지고 일을 했던 거래처에서 임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는 상황까지 더해졌다. 왜 자꾸만 일을 하고, 돈을 달라고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는 걸까.


남편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냐고, 나는 이런 불안정한 삶이 너무 두렵고 싫다고. 하지만 남편은 직업을 바꿀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에게 이 일은 힘들기도 하지만 계속 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다. ‘지금 네가 하고 싶은 일이 우선이 되어야 될 때가 아니야. 당장 먹고 살 돈이 없다고!’ 라고 생각했지만, 쏘아붙일 힘이 나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껏 남편은 잘 해왔고, 이제 처음 하나의 산을 넘는 중이니까.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주 2일에서 주 3일로 시간이 늘어났다. 한 달에 내가 받을 급여가 어느 정도일지 계산을 해보고는 생각보다 돈이 얼마 되지 않아 상심했는데, 하루 더 일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여러모로 나에게 맞는 일자리였다. 그렇게 대단한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인간관계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책을 보거나 글을 쓸 수도 있었다. 이런 내 일상이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던 차에 사장님에게 문자 한 통을 받았다. 편의점을 대신 관리해 줄 사람이 구했으니 12월까지만 일 해달라고.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가기 위해 부랴부랴 집을 나서던 참이었다. 차라리 정신없는 틈에 이 문자를 받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길까. 나는 지금 돈을 벌어야 하는데, 글도 쓰고 싶은데, 그래서 이 곳이 참 좋았는데, 왜 내 일상이 자꾸만 흔들릴까. 며칠 그런 생각들을 하던 중 또 사장님에게 문자가 왔다. 편의점을 맡아주기로 했던 사람이 갑자기 못하게 됐다고, 그러니 예전처럼 다시 일해달라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꼴이 참 우습다고 느끼기도 전에, 그저 일단은 다행이라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래전, 엄마와 함께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짐이 꽤 무거워서 내가 다 들겠다고 우겼지만 엄마는 한사코 거절하면서 말했다. "나는 면역이 돼서 괜찮다."라고. 이토록 무거운 시간들이 지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 보면 그때의 일이 떠오른다. 엄마에게 그 짐들이 가볍게 느껴진 건 아닐 거다. 무겁지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누군가에게 떠맡길 수 없다는 걸 아니까. 어쩌면 나는 지금과 같은 문제를 만났을 때, 또 불안해하고 흔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쓰러져 있는 시간이 지금보다는 짧기를, 한숨을 쉬는 순간들도 지금보다는 적기를. 그리고 언젠가는 다가오는 것들 사이를 묵묵히 잘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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