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자라는 것 만큼
평화롭던 저녁시간. 아인이에게 평소 하던 것처럼 "엄마는 아인이가 제일 좋아"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세상 다정한 나의 말에 대한 아인이의 답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나는 엄마가 안 좋아. 아침에 엄마 무서워."
내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가는 날은 8시 10분에 기상해서 9시 30분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1시간 20여 분간의 준비시간은 여러 가지 변수에 대처하는 시간도 포함되어 있다. 아무 변수도 일어나지 않으면 등원을 시키고도 시간이 남아 아인이와 어린이집에 함께 있다가 출근을 한다. 하지만 그날은 다양한 변수가 일어났고, 그만큼의 짜증을 아인이에게 쏟아 부었다. 설상가상으로 밖에는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아인이는 신이 났다. 평소보다 말이 많았고, 걸음도 느렸다. 씽씽카를 타는 것 같다며 미끄러지듯 걸어가기도 하고, 눈을 만져보기도 하고, 고드름을 따기도 하면서 여유롭게 눈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나는 속이 터졌다. 자꾸 아인이에게 빨리 오라고 짜증을 내고, 아인이의 질문에 대답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온통 10시까지 출근해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정신없이 등원을 시키고 편의점으로 가는 길. 그제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만 더 친절하게 이야기 할걸, 조금만 더 웃어줄걸 하고.
임신기간 중에 유독 악몽을 많이 꿨다. 주로 난폭한 아빠가 엄마나 나, 동생들을 힘들게 하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출산 전에 아빠에 대한 감정을 어느 정도는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야 아인이에게 그로인한 부정적인 감정이 옮겨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출산과 육아가 이어졌다. 그런데 아인이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번쩍 정신이 들었다. 적어도 유년시절엔 아무 상처도 없었음 했고, 상처를 받더라도 나 때문은 아니었으면 했다.
결핍과 슬픔, 어느 정도의 불행은 그저 우리 삶의 보편적 조건이다. 특별하지 않다. 아이들 역시 여기 적응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만들고, 성격과 스타일을 만들고, 자신만의 가치관을 만든다. 그러다 보니 저마다 어느 정도 기울고 비틀어지기 마련이지만 다 괜찮다. 사람은 그런 존재다.
-서천석의 행복한 아이연구소 페이스북 페이지 <우리는 모두 부족함 속에서 성장한다> 중에서-
결핍과 슬픔, 어느 정도의 불행을 갖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을 아인이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안쓰럽고 미안해진다. 나의 화와 짜증으로 시작한 하루가 그날이 처음은 아니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하지만 그 또한 아인이가 자라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모든 걸 아인이에게 맡기겠다는 말은 아니다.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늘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할 거고, 늘 최선을 다해 아인이를 사랑할 거다. 그러다보면 조금은 성장해 있는 나를 만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