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의 백일. 그러니까 여동생 딸의 백일. 온 가족이 동생의 집에 모이기로 했다. 가족들을 만나는 것, 그리고 조카가 백일이 될 때까지 무탈히 잘 자랐다는 건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출발하기 전부터 나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예상대로 모든 관심은 조카에게로 향했다. 당연한 거였다. 나조차 조카를 보고 있었으니까. 아인이는 집에서 챙겨 온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남동생과 제부가 번갈아가며 아인이의 놀이에 참여해주었다. 작년, 엄마 생신 때, 친정식구들이 동생집에 모였을 때가 떠올랐다. 아인이는 소파에 올라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고, 온 가족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웃었다. 아인이가 달라고 하기도 전에 간식을 대령했고, 아인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질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아인이는 그때와 지금을 딱히 비교하지 않는 듯했다. 평소처럼 잘 놀았고, 잘 먹었고, 잘 웃었다. 나만 다른 사람들처럼 들뜬 표정을 하고 있느라 애를 썼을 뿐이다.
아빠는 가방을 주섬주섬 뒤적거리더니 작고 네모난 것을 꺼냈다. 금반지였다. 그리고 덧붙인 말. “OO(조카)이 주려고 사 왔다. 아인이때는 사정이 안돼서 못해줬는데, 서운해도 어쩔 수 없고.”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 삼남매 중 나만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던 것. 내 성적이 그리 특출 나지도 못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데다 동생들도 몇 년 안에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왜 나와 관련된 일들에선 늘 사정이 안되었던 것일까. 나는 그게 마음의 문제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장녀가 감당해야 할 것도 있는 법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동생들을 매우 사랑하는 나는, 아빠의 “어쩔 수 없고.”라는 말 때문에 서운해졌다. 내가 서운함을 느낄 걸 조금이라도 예상했다면 미안한 마음이 따라오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그걸 왜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정리해버리는 걸까. 그 말을 들은 남동생은 나를 보며 약올리는 말투로 서운하냐고 물어댔고, 진심으로 서운했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동생의 의도가 나를 놀리려는 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우리 남매는 아빠가 분위기 깨는 말을 하거나 상대방의 기분은 전혀 생각지 않는 말을 했을 때, 서로를 바라보며 묘한 웃음을 짓는데 남동생의 표정이 그랬기 때문이다. 아마도 남동생은 내가 기분이 상할까 마음이 쓰였을 거다.
백일잔치는 대체로 순조로웠다. 하지만 내 감정이 대체 어디서 온 건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인이는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을 많이 만나 즐거워 보였다. 그런데 마치 내가 주인공의 자리에서 밀려난 것처럼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감정이 버거워서 동생이 준비한 순서가 끝나는 대로 아인이와 놀이터에 나갔다. 자꾸만 가족들이 아인이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만 보였다. 평소 같았으면 아인이가 나간다고 했을 때 온 가족이 한꺼번에 따라나섰는데 이번엔 모두가 주춤주춤 했다. 얼마가 지나니 엄마와 남동생이 나왔고, 또 더 시간이 흐르니 아빠가 나왔다. 그리고 멀찍이 앉아서 노는 걸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는 내가 아직도 아빠에게 뭔가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데에 스스로에게 큰 실망을 했다. 엄마아빠를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으나, 늦게 출발하면 차가 막힐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먼저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 와중에 엄마가 아인이가 떠나는 걸 아쉬워하는지 아닌지를 계속 살폈다.
언젠가 여동생이 엄마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엄마는 내가 아기 낳아도 아인이만큼 예뻐해주지 않을 거지?”라고. 엄마에겐 딱히 차별이란 게 없었다. 아빠가 장남이라 엄마는 꼭 아들을 낳아야 했고, 그래서 딸 2명을 낳은 후에야 아들을 낳았는데도 그랬다. 아무리 우애가 좋은 형제자매 사이에서도 이런 감정은 자연스러운 걸까. 그게 아니라면 나는 아주 욕심이 많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다시 한번 둘째를 낳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