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윗홈. 3부

고마웠던 우리 집

by 이다래

대출이 승인되고 나니 그제야 우리가 이사를 한다는 게 실감이 났다. 고마운 집이었다. 집 바로 뒤에 작은 산이 있어서 아침엔 새소리, 저녁엔 풀벌레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비 오는 날엔 진한 숲 냄새를 맡는 것도 좋았고, 철마다 피는 꽃을 보는 일도 좋았다. 유별난 이웃들도 없었고, 동네 분위기도 조용했다. 오래된 빌라였음에도 불구하고 물이 샌다거나, 수도배관이 동파된다거나 하는 큰 일도 없었다. 집값도 싼 편이어서 매달 나가는 대출금도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오랫동안 알았던 사람들이 모여있는 이 동네에 계속 살고 싶다는 나의 소망을 이루어 준 집이었다.


살면서 불편한 점도 많았는데 자꾸 좋았던 기억만 떠오른다. 그렇게 몰랑몰랑한 마음으로 주방의 찌든 때를 청소했다. 깨끗한 모습으로 이 집으로 보내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나 혼자 중얼거렸다. 그동안 고마웠어. 좋은 주인 만나서 잘 지내. 라고. 주책맞게 눈물이 났다. 빨리 집이 팔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왜 이러는지. 5년의 시간 동안 이 집이 너무나 익숙해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사실은 이 집이 좋아서 5년을 살았던 건지 모르겠다.


몇 번 보진 못했지만 매수자분은 좋은 사람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보러 왔지만, 10명 중 9명은 영혼 없이 집을 보고 갔다. 나는 그 이유를 우리 빌라의 1층과 출구 사이에 있는 가파른 20개의 계단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수자분은 처음부터 우리 집을 꼼꼼히 봐주셨다. 무엇보다 강화마루 바닥을 알아봐 주신 게 기분이 좋았다. 우리 부부가 이사 들어올 때 나름 큰돈을 들여 시공을 맡긴 것이기도 했고, 하고 나서도 사는 내내 만족스러운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계약을 한 후에는 남편분과 다시 방문하셔서 집 이곳저곳을 더 자세히 살펴보셨다. 집이 깨끗해서 수리할 데도 없겠다고, 벽에 페인트칠이 되어있는 것도 예쁘다고, 주방에 달린 레일조명도 마음에 든다고 하셨다. 집을 좋게 봐줘서 고맙다고, 우리 집이 좋은 분들에게 가게 돼서 좋다고 생각했다.


아인이는 나보다 더 집을 떠나보내는 게 힘들어 보였다. 이사를 가야 된다고 했더니 슬픈 표정으로 집을 통째로 가져가면 안 되냐고 말한다. 이사 갈 집에 대한 장점에 대해 수시로 말해주었지만 별로 와닿지 않는 듯했다. 이사하는 날 아침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아인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가까스로 브이를 하고 집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사를 온 후에도 가끔 말한다. "엄마 그 집이 그리워."라고.


빌라에 주차장이 없어서 걸어서 2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거주자 우선주차 구역을 이용했었다. 차를 타고 나갔다 들어올 일이 있으면 남편이 가끔 집 앞에 내려줄까? 하고 물어볼 때가 있었는데, 웬만하면 같이 내려서 집까지 걸어오곤 했다. 이사를 온 후, 한 달여 만에 그 길을 지나오는데 남편의 "아인이가 점프하던 곳이네."라는 한마디에 이런저런 기억이 떠올랐다. 짧지만 여러 추억이 있는 길이었다. 아인이는 매번 남편 손을 잡고 낮은 담을 밟고 올라서 점프를 했다. 남편이 조금 늦게 뒤따라오는 날엔 아인이와 함께 주차되어 있는 차 뒤에 숨어서 남편이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나는 아마도 아인이와의 기억 때문에 이 집을 떠난 게 더 아쉬운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너무나 고마웠던 집. 가끔 지네가 나오고, 가파른 계단이 힘들고, 제일 가까운 편의점은 10분을 걸어야 나오고, 빛도 잘 안 들어오고, 어린이집과의 거리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멀었지만 그래도 너무나 고마웠던 집. 그래서 아직도 그 집에 가야 제대로 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부디 우리 다음 사람에게도 그런 집이길. 그리고 새로 만난 집과도 얼른 친해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