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토요일

by 이다래

토요일 오후였다. 남편은 야간근무가 잡혀서 출근한 상태였다. 날은 비가 올 듯 흐렸고, 점심을 먹고 난 뒤라 몸이 나른했다. 거실에서 놀다가 아인이가 장난을 심하게 치길래 조금 속이 상하다는 핑계로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사실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얼마 안 되어 내가 누운 침대로와 비집고 눕는 아인. 아까 너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고 했더니 제대로 된 사과는커녕 딴소리만 하면서 웃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시작된 끝말잇기. 요즘 아인이는 끝말잇기에 꽂혀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단어의 끝말이 뭔지도 잘 모르더니 이제는 끝말을 제대로 짚어내고 내가 알려주지도 않은 단어를 척척 이어간다. 다만 여러가지 편법이 들어간다. 단어가 막히는 것 같으면 아인이가 떠올리기 쉬운 단어를 생각해서 힌트를 주기도 하고, 발음이 비슷한 단어는 그냥 넘어가 주기도 한다. 그리고 아인이는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장난을 치고 싶을 때, 끝말에 내 이름을 붙여서 말해버린다. 개미-미다래! 이런 식으로. 그게 재미있는지 늘 말하면서 깔깔 웃는다.


그렇게 잠시 누워있다가 아인이에게 나갈까? 하고 물었다. 아인이는 나가고는 싶지만 준비하기가 귀찮은지 엄마가 먼저 씻으라고 한다. 사실 나도 같은 마음이어서 아인이가 먼저 씻어 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럼 엄마 가위바위보 하자. 라길래 했더니 내가 이겼다. 아인이 먼저 씻어! 했더니 싫다며 원래 이긴 사람이 먼저 씻는 거란다. 그런 게 어딨냐고 했더니 그럼 다시 가위바위보를 하자는 아인. 그렇게 총 5번을 했지만 누가 이겼는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아인이는 내가 낸 걸 보고 자신이 뭘 낼지 결정했고, 하나빼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두 손을 한꺼번에 내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누가 먼저 씻을지 정하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나는 아인이의 mbti가 나와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겨우 집에서 나온 우리는 약속한 대로 포켓몬카드를 사러 문구점으로 향했다. 원래 토요일은 뽑기를 하는 날이었는데, 어린이집 친구에게 포켓몬카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오더니 뽑기 대신 포켓몬카드를 사고 싶단다. 설레는 마음으로 포켓몬카드를 고른 아인이. 점퍼 주머니에 고이 넣고 카페로 향했다. 평소에 우리 가족이 자주 가는 카페다. 사장님도 친절하시고, 음료와 디저트도 맛있는 데다 분위기도 좋고 집에서도 가까워 자주 찾는 곳이다. 특히 고마운 건 월컴키즈존 이라는 것. 하지만 이곳은 곧 폐업을 앞두고 있었다. 건물주가 월세를 올리겠다고 했단다. 그것 말고도 이런저런 사정은 있어 보였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저 쉬운 결정은 아니었겠구나 하고 짐작만 할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근처에 있는 어린이도서관에 들렀다. 평소에 아인이는 내가 추천하는 책은 제대로 보지도 않고 싫다고 했지만 이번엔 웬일로 내가 고른 책이 재미있어 보인단다. 공룡이 나와서 그런가 보다. 총 네 권의 책을 골라 집으로 향했다. 아인이는 놀이터에 들르고 싶다고 했지만 이젠 진짜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직 4시 반이었다. 남편이 없는 주말은 시간이 더디 간다. 아인이는 집에 오자마자 빌려온 책도 내팽개치고 포켓몬카드를 꺼낸다. 그러더니 원래 집에 가지고 있던 포켓몬카드까지 다 쓸어 모아서는 게임을 하자고 한다. 두려웠다. 이 게임은 무한 반복되며, 무조건 아인이가 이겨야 하고, 규칙도 무척이나 단순해 재미도 없다. 게임은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계속되었다.


저녁으로 떡볶이를 먹기로 한 우리는 배달 대신 직접 포장을 해오기로 했다. 가끔 이렇게 아인이와 저녁거리를 사러 나오곤 하는데 밤에 둘이서 걷는 느낌이 왠지 좋다. 떡볶이 가게 직원의 응대가 불친절해서 기분이 조금 상했지만 떡볶이가 너무x10000 맛있어서 금세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저녁시간은 순조로웠다. 아인이는 큰 투정 부리지 않고 씻겨주었고, 피곤했는지 금세 잠이 들었다.


언제쯤 아인이와 둘이서만 보내는 휴일이 즐거울까. 아무리 생각해도 빨리 커주는 것 밖엔 없는 것 같은데, 만약 다 커버린 아인이를 만나면 지금의 아인이가 그리울 것도 같다. 그리고 새벽 1시가 다 되었을 무렵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의 고생을 세세히 말하고 싶었지만 남편의 모습을 보니 얼른 씻고 쉬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루를 보낸 우리 셋. 어느 토요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