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사람과의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도, 멀어도 힘들게 느껴지는 건 똑같다. 자주 그런 건 아니고 가끔, 생리주기가 다가올 때쯤이나, 스트레스가 심할 때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그렇다. 미리 예측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기분은 늘 불시에 찾아온다. 그럴 땐 최대한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사람이 없는 길로 다니고, 약속도 웬만해선 잡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있다.
얼마 전 일이었다. 지인과의 약속 장소에서 우연히 a를 만났다. 어쩌다보니 잠깐 합석을 하게 되었는데, 나는 그 시간이 불편해서 가슴이 답답할 지경이었다. a는 평소에 나와는 잘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같이 있는 시간 내내 a는 나에게 한마디도 걸지 않았다. 그 기분을 이겨내고 싶어서 a에게 궁금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묻고, a의 말에 과하게 웃으며 반응했는데, a는 시종일관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금세 지친 나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심호흡을 했다. 스트레스가 오고 있다는 기분이 물리적으로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생각했다. 내가 a에게 뭔가 잘못한 일이 있는지. 도무지 짐작 가는 일이 떠오르지 않자 a와 친한 사람에게 잘못한 게 없는지까지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간 알 수 없는 자책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스스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찌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편에게 조차 a와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 길에서 우연히 a와 만났다. 나는 그때의 감정을 티내고 싶지 않아서 밝게 웃으며 인사했고, a 역시 그때와는 다르게 밝게 인사해주었다. 그렇게 나의 자책의 시간도 끝이 났다. 생리기간이 끝나서도, 스트레스가 사라져서도 아니었다. a가 다시 나에게 다정하게 대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은 편해졌지만 나는 내 모습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다지 가깝지도 않은 사람의 말과 행동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꼴이라니. 기분이 개운하지 않은 상태로 하루를 보내다 문득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20대 후반 즈음, 친한 언니동생들과 자취를 하던 때였다. 그때의 나는 '사람이 힘든 기분'을 숨길 줄 몰랐다. 거의 1주일 정도를 퇴근하자마자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리고, 대답도 퉁명스럽게, 반응도 퉁명스럽게 했다. 그런 나를 보다 못한 한 언니가 말했다. 요즘 무슨 힘든 일 있냐고, 괜찮아지면 언제든 말해달라고. 그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시기의 나는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확실시되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노력이란 걸 하기 시작했다. 티를 많이 내지 않으려고.
그랬던 내 모습이 있었다. 내 기분에 따라 다른 사람을 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내가. a와 함께 있었을 때의 나는 미움받을까 전전긍긍했던 게 아니라, a의 상태를 배려했던 거라고, 그러니 스스로를 너무 괴롭히지 말자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게 말처럼 쉽진 않지만. 아! 사람을 만나는 게 늘 평온하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