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좋은 기분

by 이다래

20대 후반 즈음, 여초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나 포함 5명 정도가 어울려 다녔는데, 별 일이 있지 않는 한 다같이 퇴근하고, 주말에는 우리끼리 맥주도 한잔 하곤 했다. 그러던 중 자취를 하고 있던 한 명(이하 ‘a’)이 우리 동네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됐다. 어쩔 수 없이 나와 a는 출퇴근을 함께했다. 처음엔 버스에서 보내는 나만의 시간을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이 조금은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a와의 출퇴근 길이 즐거워졌다. 이전에는 알지 못했는데, a와 나는 비슷한 부분이 많았고 웃음코드도 비슷했다. 나는 점점 a가 나의 단짝친구인 것처럼 느껴졌다. 구내식당에서도 a의 옆자리에 앉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화장실에서 우연히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여느 때처럼 다같이 점심을 먹는데, a가 b와 지난 주말에 만나서 쇼핑을 했다는 이야길 들었다. 사실 a와 b는 입사동기였고 지금의 부서로 이동해 오기 전까지 쭉 같은 부서에 있던 사이였다. 둘이 특별히 친하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그때부터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a는 나를 대하는 것과 나머지 3명을 대하는 게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걸. 나는 a와 함께하는 퇴근길이 점점 어색하게 느껴졌다. a에게 섭섭한 마음과 함께 어떻게 하면 a와 제일 친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뒤엉켜서 뚝딱이가 되어버렸다. 자기 전 이불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내 기분을 제일 가라앉게 했던 생각은 ‘나만 a에게 푹 빠졌었구나.’하는 거였다.


나는 a와 출퇴근을 같이 하던 이전의 상태로 내 마음을 돌려놓으려고 애썼다. a는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나를 대했지만, 나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한껏 커졌던 마음은 쉽게 작아지지 않았다. 마음속으로는 주인 만난 강아지처럼 a에게 꼬리를 마구 흔들어대고 싶지만 자제하고, 또 자제했다. 그렇게 내 자연스러운 모습을 감춘 날에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와 한 몸이 된다. 좋아하는 마음을 억누르면서 내 자존심을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들었다.


내 인간관계는 종종 이런 패턴을 보였다. a처럼 두루두루 잘 지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나는 한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는 데 더 익숙했다. 학창 시절에야 단짝 친구라는 개념이 흔하니까 별 문제가 없었는데, 20대 초반에는 이런 식의 패턴이 스스로를 그리고 주변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단짝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나 외의 누군가와 친한 모습을 보는 게 힘들었고, 그 힘든 마음을 상대에게 그대로 표현하곤 했다. 그때의 나는 그런 식으로 몇 명의 단짝을 떠나보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몇 가지 다짐을 하게 됐다. a에게 그랬던 것처럼 커져버린 마음을 되돌리려 노력하지 않기. 그저 자연스럽게 내 마음을 표현하고 상대의 여러 관계들도 존중하려 ‘노력’하기. 그것마저 쉽지 않을 땐 되도록이면 상대에게 속상한 내 마음이 전달되지 않도록 하기. 하지만 이런 다짐들이 늘 잘 지켜지진 않는다.


30대 후반의 나는 여전히 누군가와 단짝이 되고 싶어 하고, 상대의 마음의 크기가 나와 같지 않음을 깨달았을 때, 또는 상대가 관계를 맺는 방식이 나와는 다르다는 걸 깨달았을 땐 속상해하기도 한다. 그 속상함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때는 좀 더 나에게 냉정하게 말해본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날 구원해줄 의무는 없어. 라고. 아!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고, 나 자신이랑 제일 친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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