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 적응기 #2
내 첫 회사는 특정 분야의 출판사였다. 아니, 출판사라기보다는 특정 분야의 단체였다. 전국에 지부가 있는 단체로 출판사는 서울 본부에 함께 있었다. 그 분야에 관한 다양한 책들을 만들었는데 격월로 발간되는 정기간행물이 가장 인기 있는 책이었다. 연령별, 내용의 난이도별로 구분해 발행했는데 같은 분야 다른 출판사들의 정기간행물들보다 인기가 있었다. (내가 담당했던 청소년 대상 정기간행물은 그 분야 동일 연령 대상 간행물 중 판매 1위 찍기도 ㅋㅋㅋ) 그리고 정기 구독하는 분들의 충성도는 정말 높았다. (나도 포함 ㅎㅎㅎ) 독자층도 다양했는데 일반 독자뿐만 아니라 전문가들도 많이 있었고, 전 연령대에 분포되어 있었다.
출판 사업도 회사에서 주력하는 사업이었지만 단체로서 독자들 포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진행하는 행사들이 사실 더 중요한 사업이었다. 매해 정기적으로 정기구독자들과 후원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캠프를 하거나, 전문가들을 초빙한 강의 세미나를 하거나, 이벤트성 특별 행사를 하는 등 회사의 전문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 치르는 다양한 행사들이 있었다. 본부에서 진행하는 전국적인 행사들도 많았고, 전국에 분포되어 있는 지부들이 각 지부마다의 행사도 진행했다.
이런 다양한 행사들을 치를 때면 전 직원들이 다 함께 참여해 업무를 분담해 진행했다. 디자인 팀에서는 행사 전에 홍보를 위해 필요한 현수막, 입배너, 초대장, 포스터, 리플릿, 굿즈 등의 디자인 작업을 했다. 행사 중에는 참석자 안내, 강사 안내, 행사 사회, 행사 순서대로 진행 시 도우미, 사진 촬영, 도서 할인 판매, 구독자 모집 등 팀 구별 없이 손이 필요한 자리마다 가서 전체 행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했다. 이 중 난 사진 촬영을 주로 담당했다. 행사 녹화는 담당하신 분이 있어서 난 행사 스케치 같은 개념으로 회사 DSLR과 내 개인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었다. 내가 찍은 사진은 자료로 남겨두는 겸, 회사 회보 등 소식지를 만들 때 활용했다. (이때 되게 자신만만하게 나서서 사진 촬영했었는데 지금 그때 찍은 사진들 보면 참 부끄럽다. 노출이 하나도 안 맞아서 보정하는데 손이 참 많이 가게도 찍었더라. ㅋㅋㅋㅋ 거기다 사진 잘 찍으시는 능력자분이 많았다. 그 사진들 모아 정리하는 것도 내 일이었지...) 이후로도 계속 찍다 보니 사진 찍는 실력은 많이 늘었는데 그 기간 동안 누구도 찍지 말라고 안 하고 계속 찍을 수 있게 독려해주신 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ㅋㅋㅋ
내가 사진을 재미있게 찍으며 실력이 늘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동료분들의 적극적인 참여 덕이었다. 당시 나는 서울본부에서 막내였다. 나랑 입사동기는 동갑이었고 우리와 밀접히 협업하는 분들이 3-4살 차이였다. 입사 초기에는 서로 낯가리는 시기라 데면데면했었는데 회사에서 치르는 행사마다 같이 일하다 보니 점점 친해질 수 있었다. 어느 행사 때 이제 좀 친해진 듯해서 행사 중간중간 짬이 날 때 빛이 좋은 공간을 찾아 동료분들에게 포즈 취해주기를 요청했다. (회사 DSLR이 캐논이어서 사람을 찍으면 참 예쁘게 나왔었기 때문에 친해진 언니 오빠들을 예쁘고 멋지게 찍어주고 싶었다. ㅎㅎ) 처음 요청할 때는 다들 그냥 가만히 서서 찍히겠거니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해달라는 대로 다 포즈를 취해주시는 거 아닌가! 제일 처음 요청했을 때만 좀 수줍어하시더니 이후로는 민망해하는 거 하나 없이 '앉아달라, 다리를 내밀어 달라, 시선은 저기를 봐달라, 저 옆에 서봐달라' 등 요청대로 다 해주시고, 더 재미있는 사진을 위해 같이 논의하며 찍기도 했다. ㅋㅋㅋㅋ 처음에는 이렇게 구도 짜서 같이 사진 찍는 분들이 서너 명 정도였는데 우리가 사진 찍고 노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나중에는 어르신들도 슬그머니 같이 찍으시더라. 정기적으로 회사 직원들 다 모여 워크숍을 갔었는데 다니는 장소마다 설정샷들을 열심히 찍었었다는! (단체 점프샷은 필수 설정샷이었다. ㅋㅋㅋㅋ)
그 외에 했던 일에는 도서 포장일이나 인쇄소에서 본부 창고로 입고된 도서 정리를 돕는 일도 있었다. 지금은 별도 물류창고가 있어서 본부에서 안 하는 걸로 아는데 내가 입사했을 당시에는 본부 창고로 도서를 입고해 한두권 배송이나 일정량 이하의 배송은 본부에서 직접 포장해서 보냈었다. 인쇄소에서 도서 입고되는 날은 손이 비는 직원들은 모두 같이 합심해 돕는 날이었다. 마감이 바쁠 때면 편집부에서 내려갈 일은 없었지만 머리를 식히고 싶거나 너무 오래 앉아있는 게 힘들 때 살짝 숨 돌리기 좋은 일이기도 했다. 같이 도와서 책 나르다 더워지면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 등 간식도 같이 나눠먹고 상사분들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재미도 있었달까 ㅎㅎㅎ
그리고 도서 포장일은 수습기간 동안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었다. 도서 포장과 배송 담당하시는 분들이 계셨지만 많지 않았고, 급하게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일들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었기에 그분들이 자리를 비우셨을 때를 대비한 것이었다. 주 판매 도서 중에 하나가 정기간행물이었는데 이런 책은 배송 예정된 기한을 넘기면 안 되니 말이다. 그래서 입사 후 수습기간 동안 누구도 빠짐없이 도서 포장 & 배송일을 배워야 했다. 책상에 앉아서 하는 일만 예상했다가 몸 쓰는 일을 해야 하는 건 낯설었지만 이 경험은 의외로 동료 사이의 유대감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거기다 디자인 작업하다가 정말 안 풀릴 때 본부 창고 가서 별생각 없이 도서 포장하다 보면 머릿속이 환기되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시간이기도 했다.) 맡은 업무가 서로 많이 다르면 서로에게 공감하기가 쉽지 않은데 입사 후 모두가 겪어야만 하는 동일한 경험이 있다 보니 공감대 형성이 훨씬 쉽고 같은 공동체에서 함께하는 동료라는 마음이 잘 자리 잡더라. 그 덕분에 연관된 업무를 진행할 때나 그렇지 않을 때도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며 일할 수 있더라.
이제는 내가 겪었던 것처럼 맡기로 한 업무 외의 일들을 추가로 하면서도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함께하는 분위기를 바라는 건 그저 로망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로망을 간직한 채로 같은 로망을 가진 이들을 찾아봤더니 내 주위에 있긴 하더라. 그래서 좋은 동료들과 서로 응원하면서 지금 회사를 잘 다니고 있다. 이렇게 찾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내가 하는 업무만 고집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도 같다. 내 주 업무에 국한하지 않고 연관되는 업무 전반에 대해 알아보고 물어보며 만나게 되니 서로의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전체 프로젝트 진행의 원활함도 높아지고, 전체 프로젝트의 큰 그림을 그리고 제안할 수 있게 되는 눈도 가질 수 있게 되더라. 그러면서 더 친해지는 동료들도 만날 수 있었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이 로망을 간직하며 지낼 것 같긴 하다. 지금의 찐친들을 만나고, 경력을 다질 수 있게 해 준 힘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