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초보 편집디자인 입문기
지금은 편집디자인의 주 프로그램이 어도비 인디자인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내가 처음 편집디자이너로 경력을 시작할 때 대중적으로 쓰던 환경은 '매킨토시 OS 9'에 '쿽 익스프레스 3.3k'을 사용하는 거였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입사 첫날 만났던 Power Mac G5는 기본으로 OS 10을 깔아 둔 거라 쿽 3.3을 제대로 설치하는 게 어려웠던 것 같다. 쿽 3.3보다 상위 버전을 설치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다른 디자이너분들이랑 작업 파일 호환이 당장은 어렵고,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 방법을 찾기엔 당장 마감이 급했던 이유들이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그때 G5를 못 쓰고 G4를 썼던 게 참 많이 아쉽긴 했나 보다. 이 기억이 계속 나니 말이다. ㅋㅋㅋㅋ)
입사하고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 매킨토시 자체의 생소함도 신기했지만 책을 만들기 위한 편집 프로그램인 '쿽'의 존재를 잘 알지 못했기에 제대로 보는 첫 만남이 되게 신기했었다. 요즘에는 볼 수 없는 당시 매킨토시만의 특유의 GUI ㅎㅎㅎ 지금 보면 새록새록 그리운 느낌이 든다.
각 창에 들어간 저 줄들이 매킨토시 창 디자인의 특징이었다. (이 글 보시는 분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뉠 것 같다. '맥이 저랬었다고?'와 '이야, 오랜만에 보네' 하는? ㅎㅎㅎ) 바탕화면은 천연색으로 설정할 수 있는데 그 위의 프로그램 창들의 그레이 스케일 무드는 매킨토시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런 그레이 계열의 창은 이미지와 색들을 더 잘 보이게 하는 역할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매킨토시는 영어 친화적이지 한글에 친절한 시스템은 아니었다. 라틴계열 문자가 아닌 문자를 입력할 때면 텍스트 입력창이 새로 뜨고 거기에만 입력해야 했다(이미지를 찾아보려 했는데 워낙 오래전이라 찾을 수가 없네. 2010년 이후 맥에서 보일 때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건 버그였네. ㅋㅋㅋㅋ). 그리고 그 입력창은 한글 변환한다고 항상 제대로 뜨는 것도 아니었고, 한글 변환된 줄 알고 열심히 타자 쳤는데 입력창이 제대로 안 떠서 하나도 입력이 안되어 있거나, 잘되던 한글 변환이 갑자기 안돼서 이유를 찾아 재정리한다던지 신경 써야 하는 일이 참 많았다. 거기에 메뉴의 한글 서체는 독특함은 있었지만 예뻐 보이는 서체는 아니어서 한글 메뉴 나오는 프로그램을 쓸 때마다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ㅎㅎㅎ
쿽 익스프레스 3.3k는 한국 출판 환경에 맞게 개조한 버전이었다. 매킨토시가 기본적으로 한글에 친절하지 않았던 것처럼 쿽도 한글에 친절한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3.3k 버전은 한국 출판 환경에 맞춰 개조한 것이었음에도 작업하는데 원활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특히 서체. 서체 하나 새로 설치하면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 봐야 했고, 잘 쓰던 서체들도 마감 때 이상 없이 인쇄용 작업을 할 수 있는지 두근거리며 작업해야 했다. 마감 전에는 무리 없이 인쇄용 패키지 할 수 있던 파일도 막상 업로드 직전에 패키지를 하면 꼭 뻑이 났다. 그래서 마감 때 야근을 안 한 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한글 글자는 완성형으로만 입력이 가능해서 쓸 수 없는 글자도 꽤 많았다. '쿽' 같이 2,350자 안에 포함되지 않은 글자를 입력하는 게 불가능해서 일러스트레이터에서 만들어 이미지로 삽입해야 했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번역서 작업도 많이 했던 곳이었는데 사람 이름이나 지명 등 발음대로 적어야 하는 단어들 중 2,350자에 속하지 않는 단어들이 있어서 이미지로 만든 경우들이 꽤 많았다. 이렇게 만든 글자들은 검색으로 찾을 수가 없어서 이후 재쇄 할 때를 대비해 특이점으로 잘 기억해둬야 했다.
사용할 이미지 파일도 지금과는 달랐다. 당시 쿽은 tif, eps 파일들만 삽입이 가능했다. 그리고 쿽 파일 삽입용 이미지 파일을 저장할 때는 체크해야 하는 설정들이 있었다. 어떤 것들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작업해야 할 이미지가 많아지면 체크하는 걸 잊어버리고 다시 작업하는 경우들도 많았다. 인디자인은 파일 형식 상관없이 작업한 이미지나 동영상 파일을 저장한 대로 사용할 수 있어서 굉장히 편한데 그때만 해도 작업하는 과정마다 꼼꼼히 체크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었다. 그때는 귀찮기도 했지만 그 경험들이 쌓여서 지금의 꼼꼼함을 가질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던 것 같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이 과정들이 글로 적다 보니 새록새록 기억이 나고, 감회가 새롭다. 정말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ㅎㅎㅎ 아마 지금 작업하는 과정도 또 몇 년이 지나면 구닥다리 방식이 될지도 모르겠다. 몇 년이 지난 뒤에도 일하고 있으면서 '지금 참 좋은 세상이다'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