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lgoongjun Jun 02. 2022

06. 제작 견적도 한 번 알아볼까?

책 제작 과정 이해하기 #2

필름 출력 단가 비교해 보기


편집디자이너로 일한지 2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어느날 회사에 손님 한 분이 찾아오셨다. 편집자분들과 디자이너분들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셨는데 우리가 거래하는 필름 출력소에서 일하셨던 분이라고 하더라. 그분이 독립해 필름출력소를 개업하셔서 인사할 겸 오신 거였다. 아시던 분들과 반갑게 인사 나누시고 간단하게 근황 이야기하시고 가셨다. 가시기 전에 전체 팀원들에게 명함 돌리시면서 인사하고 가셨는데 제일 막내에 말단인 내게도 깍듯하게 인사하고 가시더라. 밝은 분위기에 활짝 웃으시는 모습이 인상이 정말 좋으셨다. 가시고 난 뒤 다른 분께 어떤 분인지 여쭤보니 인상 좋고, 일 잘하시고, 되게 친절하신 분이라고 말씀하시더라. 그래서 그분 출력소의 견적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고 싶어졌다.


그때는 회사에서 어린이 대상 정기 간행물의 색 도수를 변경하려고 고심하던 때였다. 당시 어린이 대상 정기 간행물들은 표지는 4도, 내지는 2도로 작업하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의 경쟁력을 생각하면 내지도 4도로 바꾸는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 아래 어느 시기에 4도로 바꿔서 발행할지 논의 중이었다. 색 도수를 2도에서 4도로 늘려 제작해야 하는데 제작비 증가에 대한 고려도 해야하고, 4도로 바꿨을 때 나올 결과물에 대한 예상치도 고려해야했기 때문에 빠르게 진행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런 때 새로운 필름출력소를 개업하신 분을 만나니 난 우리 기존 거래 출력소와 그분의 출력소 견적을 비교해 보고 싶어졌다. 조심스럽게 편집장님께 책 당 필름 출력의 양이 많아져 일이 몰리면 일정 차질이 생길 수도 있으니 인사오신 분과도 거래해 분량을 나눠서 맡기면 안되냐 의견을 냈었는데 정확히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거래처를 늘릴 수는 없다는 답을 들었다. 그래서 혼자 두 군데 견적을 비교해보기로 했다! (이거 정리 잘해서 제작비 줄이는 방향으로 간다고 해도 내가 받는 월급이 늘어나거나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내가 속한 조직에서 하는 일이 잘되면 좋겠다는 생각 하나로 시작했었다. 어찌보면 참 오지랖이다 싶은데 이런 성격이 프로젝트마다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데 일조하긴 하더라. ㅎㅎㅎ)


일단 인사오셨던 분께 연락해 색 도수 별 견적표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우리가 계속 거래하는 출력소에도 같은 견적표를 요청했다. 두 견적표를 받은 후 같은 조건의 파일을 넘겼을 때의 전체 견적을 하나하나 계산해갔다. 제작 조건은 1도일 때, 2도일 때, 4도일 때와 각 색 도수별 필름 대수를 몇 가지 경우로 분류해 각 견적을 계산했다. 난 사실 수포자라 산수, 수학, 계산 이런 거 정말 싫어한다. 그리고 맞게 계산했는지에 대해 자신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래도 나름 머리 굴려가며 계산한 것들이 틀린 적은 없어서 맡은 업무 틈틈이 계산해 갔다. (그때 잘 모르는 엑셀까지 붙잡고 열심히 정리했었다. 이런 때 구글은 항상 너무 좋은 친구!)


정리하다보니 1,2도일 때는 두 군데 견적이 비슷하고, 4도일 때는 필름 대수가 많아질 수록 새로운 출력소의 견적이 더 좋더라. 기존 출력소는 4도에 필름 대수가 많아질수록 금액이 확 올라갔고 새로운 출력소와의 견적 차이가 높아졌다. 앞으로 4도로 제작할 책들은 새로운 출력소로 옮기는게 제작비 절감에 좋은 것으로 정리하고, 새롭게 4도로 제작하게 될 책의 담당 디자이너분께 정리한 표를 보여드렸다. 처음에 '색 4도로 바뀌니 새로운 출력소에 보내는 건 어때요?' 하고 물었을 때는 큰 관심을 갖지 않으셨는데 견적 정리한 거 보여드리니 바로 편집자분들과 논의하시더라. ㅎㅎㅎ 논의하신 후 '너 이렇게 꼼꼼한 애였어? 이런 건 어떻게 정리할 생각을 다한거야~?' 하셨던 게 잊혀지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새로운 출력소 그분이 실력이 좋고 잘 챙겨주시는 분임이 전제되어 있었던데다 제작비 부분에서의 장점이 부각되니 새롭게 거래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 연락을 내가 드렸고 그때부터 그분과 내 인연이 시작됐다. 이후 4도로 작업하는 책들 중 일부를 그분 출력소에서 맡게 되었고, 업무를 진행하는 기간 내내 정말 잘해주셨다. (한번씩 내 덕에 거래 시작할 수 있었다고, 정말 고맙다고 인사해 주셔서 민망하기도 했다. ㅎㅎㅎ) 


그분은 스스로 정체되어 있는 걸 못 견디시는 타입이었다. 처음 필름 출력, 인쇄 관련 일을 시작하신 후로 변해갈 인쇄 환경에 대해 알아보고 공부하시면서 대비하시는 분이었다. 쿽으로 디자인 작업도 하시는 분이어서 디자이너들이 겪을 수 있는 프로그램 오류라던지, 필름 출력할 때 어떤 식으로 파일을 설정해서 넘기는 게 더 좋은지, 제작 방식에 따라 파일 작업을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지 등의 많은 팁을 가르쳐 주시기도 했다. 2년차를 지나는 중인, 아직 초보였던 나는 궁금한 게 생길 때마다 그분께 전화해서 여쭤봤고 그때마다 짜증 한번 안내시고 다 대답해 주시고, 더 좋은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주셨다. 필름 검판하러 그분 출력소에 가면 다양한 제작 샘플들(팝업 카드, 패키지 박스, 금박 인쇄 브로셔, 타공 들어간 리플렛 등)이 있었는데 그 제작 방식에 대해 물어보며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이렇게 물으며 배우니 실력도 많이 늘더라. 그리고 이때 물어서 알게 됐던 지식들과 그분의 업무를 대하는 자세를 통해 배운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하나의 든든한 바탕이 되기도 했다. 이후 인연은 내가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 이어졌다. 지금 회사에 입사하기 전 프리랜서로 활동했을 때 제작 의뢰를 드렸었는데 그때도 정말 든든한 협업자셨다. 지금은 연락이 끊겼지만 여전히 계속 공부하시면서 일하실 것 같다. 언젠가 다시 협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지도. :)


디자이너인데, 그것도 아직 초보였는데 견적을 혼자 계산해보려고 하는 건 과한 오지랖이 아니었냐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면 당연한 거 아님? 하실 분도 있을 듯 ㅎㅎㅎ) 하지만 내가 하는 일과 연관된 분야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실행해보려 한 노력을 통해 좋은 인연을 만나 도움을 주고 받는 관계를 맺게 되었고, 디자인 작업을 할 때 결과물 산출의 가능 범위를 파악할 수 있게 되어 제작 진행의 원활함을 경험하게 되니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데 괜한 오지랖이라는 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디자인 외에 기획, 제작, 유통 등에 대해서도 계속 물어보고 공부하며 실제 참여도 해보니 이제 한 프로젝트를 선정해 (전문 담당자 분에게 문의하면서 하지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진행이 가능하게 되고 전체를 조망하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 같다. 지금 디자인 외에 다양한 업무를 하는 걸로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생각을 조금 바꿔보는 건 어떨까 말하고 싶다. 혼자서 전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완료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건 아무 곳에서나 가능한 경험이 아니고, 이를 통해 나중에 자신만의 것을 경영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05. 출력소? 인쇄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