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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시인 May 04. 2020

외 근

광화문 어디쯤인가

 우리 팀장은 다 싫은데, 이거 하나는 좋다. 외근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기 애매한 시간이면, 그냥 집으로 들어갈래?라고 먼저 말한다. 자기도 가고 싶으니까.

 나는 이러한 귀소본능과 불성실함이 좋다. 다른 건 모두 예외사항이지만 이거 하나는 늙어서도 닮고 싶다.

 오늘은 집으로 곧장 가기 싫었다. 공덕에서 방향을 바꿔 내린 곳은 광화문역.
광화문역 2번 출구는 경복궁이랑 제일 가깝다. 오기 전에는 한참 고민했는데,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복궁 돌담길에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것은 코로나 탓일까 평일의 애매하게 이른 시간 탓일까 어느 쪽이던, 오늘 바라본 돌담길은 가장 넉넉했고 평화로웠다.
 혹시나 할 일이 생길까 노트북을 들고 나왔는데,  그런 날엔 어김없이 일복이 터진다. 콘센트가 있을 법한 카페를 찾아 미술관 근처까지 갔다. 가는 길목길목 길가에는 라일락 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었고, 그 모습은 앞만 보고 걷는 현대인조차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미술관이 휴관인 오늘, 경근당 앞에 사람들은 저마다 벤치에 앉아 오후-햇살-평화로움을 누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온기가 돌았다. 그 온기를 머금고 글을 썼어야 했는데,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에게 업무 목적 이메일을 썼다. 차창 밖에 나무들은 쉼 없이 살랑이면서 카페에서 일이나 하는 한심한 나를 꼭 조롱을 하는 것만 같았다.

"일만 끝나 봐라 나도 너를 보고 글을 쓸 거야.

 신기하게도 퇴근 시간이 다돼서 일을 마쳤다. 그다음에 해야 할 것. 카페는 여섯 시까지라고 했고, 왜 하필 광화문이었을까, 집으로 가는 방향도 아니었는데, 무언가 할 일이 있던 걸까, 그래서 이곳에까지 오게 된 게 아닐까,

괜한 물음이었다. 이미 다 알고 있는데, 망설임 때문에 주저하는 불안이었다.









눈 오는 날에 그 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정처 없이 걸었던 그 밤.
추워도 너무 추워 뜨끈한 국물이 생각났던 그 밤.
술은 취했고 더 이상 무얼 해야 할지 몰랐지만,
막상 이대로 헤어지긴 아쉬웠던 그 밤.
그 밤에 우리를 매료하게 한
광화문 어디쯤인가
큰 나무 한 그루




















그 나무를

다시 보고 싶어 왔다.

















눈 오는 그날, 덩그러니 가지만 남은 그 나무는
봄의 온기를 머금고 마침, 태어나고 있었다.












이곳에 다시 이 마음으로 온 이유는
언제 한 번 밥 먹자는 말을
첫눈 오면 만나자는 말을
철썩 믿는 바보처럼
나 혼자서만

아직도 헤어지지 못한 것이 아닐까












외로운
근성이
언제쯤 끝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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