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시인 May 04. 2020

막걸리 시음 : 4월

5 6 8








가을의 농부는 이런 마음일까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막걸리들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4월 초부터 담근 막걸리들을 최근 며칠에 걸쳐 마셨다. 막걸리라는 같은 이름 속에서도 다른 재료와 다른 숙성을 거쳐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그들만의 색깔이 나온다. 그들의 색을 보고, 담고, 마시고, 기록하는 것은 술 농사를 짓는 사람만의 역할이고 특별한 보상이다.




5차 양조
애매한 계절보다는 한여름에 더 생각나는

-담금: 4월 1일
-병입: 4월 11일
-숙성: ~4월 23일
-재료: 맵쌀과 밀누룩

 직전에 만들었던 막걸리의 맛이 옅어 이번에는 찐한 맛을 뽑아내고자 물을 부러 적게 넣었다. 밀누룩과 맵쌀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재료로 담근 5차 술은 신기하게도 기존에 알고 있던 막걸리와는 다른 향과 다른 맛이 났다.
 막걸리에서 열대과일향이 난다. 이 말을 최초로 의심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어떻게 곡식에서 열대과일 향이 날 수 있겠는가. 코를 의심하며 몇 차례나 시음을 하고 그다음 날에도 마셔봤는데 여전히 열대과일 향이 났다.  일전에 책에서 몇몇 막걸리에 과일향이 난다고 했는데 기껏해야 시큼하고 달달한 향이 어설피 섞인 사과향이나 백주 마실 때 나곤 하는 은은한 배향을 생각했는데, 그것도 증류주가 아닌 탁주에서 이렇게 노골적인 향이 나니 무언가 잘 못되었나 싶었다. 설령 막걸리 박사라도 되는 양반이 나와서 '이건 막걸리가 아니야!'라고 하면 '그래! 막걸리 안 할게'라고 쿨하게 수긍할 수 있다.
 알코올 도수가 꽤 되는데도, 색다른 향에 시큼한 맛은 옅었고, 달달한 맛이 입안에 오랫동안 남는 이 술은 분명 독특하고 맛있었다. 애매한 계절보다는 한여름에 더 어울리는 맛이었다. 다만, 숙성이 좀 덜 되었을 때쯤 마셨을 때는 신기하게 짭쪼름한 맛이 베어 나왔다.

향: 열대과일향
색: 누런 백색
신맛: ㅁㅁ
단맛: ㅁㅁㅁㅁ
탄산: ㅁㅁㅁ
후미: 제성을 거친 것은 알코올의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끝맛이 상쾌함



6차 양조
안주가 생각나는


-밑술: 4월 2일
-덧술: 4월 7일
-병입: 4월 23일
-숙성: 진행 중
-재료: 찹쌀과 쌀누룩

 계속 단양주만 만들다 처음으로 만든 중양주다. 중양주는 밑술과 덧술로 만들어지는데, 만드는 과정도 단양주보다 더 번거롭고 발효기간도 어느 때보다 길었다. 여러모로 많은 품이 들었다. 밑술을 담근 지 3주도 더 걸려 완성한 이번 술은 기다린 만큼 좋은 술이 되었다. 애석하게도 막걸리를 몇 차례 만들면서 '진짜 막걸리 맛이 나네'라고 한 최초의 술이었다. 여태 만든 막걸리들은 개성이 너무 또렷해서 안주가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이번 막걸리는 마시자마자 막걸리 하면 흔히 따라오는 파전이나 보쌈 같은 게 떠올랐다. 신맛과 단맛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었고 탄산 또한 시중에서 마시던 막걸리와 사뭇 다르지 않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두면 사진처럼 층이 나뉘는데 맑은 부분만 따라 마시면 시큼하고 풍미가 있는 화이트 와인맛이 난다.

향: 누구나 공감하는 막걸리 향 (약간의 누룩향)
색: 탁한 투명색(청주) / 티 없는 백색 (탁주)
신맛: ㅁㅁㅁ
단맛: ㅁㅁㅁ
탄산: ㅁㅁㅁㅁ
후미: 원주인데도 알코올의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부드러움




8차 양조
돈 주고 사 먹을만한


-담금: 4월 11일
-병입: 4월 19일
-숙성: ~4월 23일
재료: 찹쌀과 쌀누룩 그리고 딸기

 이제는 내 막걸리 1호 테스터가 된 친구의 가벼운 말장난으로 시작된 딸기 막걸리. 진짜로 만들 줄을 몰랐단다. 이번 시음 평은 그 친구의 두 가지 표현으로 대체한다.
하루는 집에서 같이 마셨다.

[1]
"홍대에서 여자들끼리 1차 끝나고 지하철 끊기기 전에 헤어지긴 아쉽고 다음날에 출근해야 돼서 술 많이 마시기 그럴 때, 인테리어 괜찮은 바에서 이쁜 잔에 나오면 칠천 원 줘도 사 먹을 거 같아."

그러고 나서 한 병을 선물로 줬는데, 어젯밤에 냉장고에서 꺼내 마시고 나서 오늘 카톡이 왔다.

[2]
 "내가 만약 초등학생쯤 되어서 밤에 목이 말라서 냉장고 문을 열잖아? 근데 이게 있는 거야. 우유음료인 줄 알고 마셨다가 다 마시고 취할 느낌이야. 그만큼 맛있네. 끝에가 아주 톡 쏴."

 이 시대에서 돈 주고 사먹겠다는 말만큼 칭찬은 없다. 여러 사족들이 붙었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한잔에 칠천 원 줘도 사먹겠다'는 말이다.

향: 대놓고 딸기향
색: 딸기우유색
신맛: ㅁㅁㅁ
단맛: ㅁㅁ
탄산: ㅁㅁㅁ
후미: 알코올의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입안이 산뜻하다.


사월의 막걸리 시음평을 마친다.
아무래도 오월에도 취해있을 거 같다.


작가의 이전글 막걸리를 만들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