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겨울, 그리고 내 삶의 여름

뜨거운 여름은 추운 겨울이 반드시 지난 후에야 온다

by 희유



어느덧 2025년 6월이다.

때때로 너무 오랜 침묵과 공백은

이야기를 꺼내기조차 막막하게 만든다.

그 사이 켜켜이 쌓인 이야기들이

목구멍까지 가득 차, 무엇부터 꺼내놓아야

할지 모르겠는 혼란에 빠진다.

그 모든 생각과 감정을 꺼내기 어려워

허우적대는 지금의 내가 그렇다.

도쿄 살이 전후에, 이전 어느 글에

언급했던 것처럼 나의 삶은 정말

전쟁 같았다. 마치 도쿄에 와서

모든 게 다 풀릴 거야,라는

무언의 암시처럼, 인생을 살며

이렇게까지 혹독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모든 게 다 풀렸다.

실제로 그랬다.

당시, 세상 처음 보는 사이즈의

이민 가방에 캐리어 3개를 들고

아이 둘을 데리고, 하네다공항에 도착했을 때,

내 머릿속은 기대나 설렘, 걱정도

하얗게 지워진 채,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가는

기이한 상태가 되었었다.

겨울비가 오던 날,

한국에서 도쿄로 이사 오던 그날,

두꺼운 패딩조차 도쿄의 겨울엔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하네다공항에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마치 해가 쨍쨍한 날,

혼자 우산을 들고나온 기분이었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였고,

마중 나온 남편만 가벼운 정장 차림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25년 6월이다.

그때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는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이다.

2022년에 내가 가졌던 고민과 힘듦,

해결과제들은 이미 다 사라졌고 해결됐고,

더 이상 내게 문제나 과제로 남아있지 않다.

다행이다. 정말, 그 말밖에 안 나오는 순간이다.

하지만 해결된 자리엔 언제나

다른 생각할 거리들과 고민할 거리들이

다시 들어차기 마련,

게다가 그 생각과 고민의 크기는

이 전보다 더 거대하고 높아지기 일쑤.

어제는 롯폰기 어느 식료품 매장에 들러

내가 애정하는 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를 샀다.

도쿄에서의 삶이 내 인생에서 빛나는 건,

이 모든 순간들이 자발적 선택이라는 것.

앞만 보고 달리던 내 인생에서

부단히도 힘들었던 그 순간,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 했던

일본 도쿄로의 이사를 해냈다는 것.

타국에서의 또 다른 어려움을 맞이하고,

극복하고 이제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올리브유, 발사믹 식초를 고르는 여유를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것,

이런 소소한 행복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여유,

앞과 뒤와 옆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눈앞의 상황, 1년 안의 상황만을 본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선택들을

때로는 등 뒤에 주어진 어려움이

무모한 용기가 되어

또 다른 세상에, 기꺼이 뛰어들게 한다.

이 소중한 경험들이,

앞으로 내 인생에서 어떻게 녹아 나올지,

기대되는 6월이다.

물론 나는 오늘도

순간과 찰나의 행복을 만끽하며,

오늘을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