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식탁 위의 성찰

오늘의 자리에서 내일의 나를 묻는다.

by 희유


지난 시간에는 동화 속 기사들이 사랑의 파편을 지켜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건 한 점의 보석이 아니라,

오늘의 **자리(식탁)**였다.


오늘은 다시 현실의 식탁으로 돌아와,

필자가 살아온 자리들을 이야기하려 한다.


내가 만난 작은 식탁들은 결국,

내 인생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어왔다.


식탁 안에서 발견하는 깨달음은 우리에게 무늬가 되고 흔적을 남긴다


부조리의 식탁


기자 시절, 10년도 더 된 일이다.
그날, 여기자들에게만 신문사 직원 한 명이 쪽지를 건넸다. 주소 하나만 적힌 메모였다.


“밤 8시까지 이곳으로 오라”는 말과 함께.


택시를 타고 세 명의 여기자가 도착한 곳은 도의원들과의 회식 자리였다. 한 사람씩 인사를 건널 때마다 맥주잔이 파도처럼 돌았다.


영화에서만 보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자,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동시에, 이게 현실의 민낯인가 싶어 씁쓸했다.


또 다른 날, 관할 경찰서의 회식에도 불려 갔다.
진급을 축하한다며 마련된 자리였다.


그들은 명함에 직급과 이름만 파서 내밀었고,

술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거~ 겨울에 우리가 길에서 어묵 좀 먹었다고

근무 태만이라 기사 좀 쓰지 맙시다.”


“기자님들, 운전하다가 혹시 작은 일에 걸리시면

연락하세요.”


술기운에 던진 농담 같은 말이었지만,

그 속내가 적나라했다.


회식 자리에선 당연하다는 듯 담배도 권했다.

나는 몇 번이고 거절했다.


“저 비흡연자예요.”


무심한 듯 말했지만,

내 표정이 씁쓸하게 보였을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순간만큼은 낯선 불편함이 나를 감쌌다.


마지막에 한 경찰이 내 손을 꼭 잡으며 택시비라며 돈을 쥐여줬다.


나는 방송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신문사 회식자리에서

더 낯설게 구분되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 회식은 내게 새로운 눈을 열어주었다.
세상은 내가 알던 정의로운 교과서 속 풍경

있는 게 아니었다.


때로는 부조리한 식탁에서조차,

세상을 바라보는 감각은 더 예리해지고,
내 안의 정의감, 옳고 그름을 가르는 기세가 다시 솟구쳤다.


모든 식탁이 따뜻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차가운 식탁에서조차, 나는 세상을 보는 눈을 얻었다.



그 부조리의 식탁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모든 식탁은 기록된다.
따뜻한 자리든, 차가운 자리든,

그 풍경은 내 안에 흔적을 남기고 언젠가는 말이 된다.
억울하고 불편했던 순간들은 내 안에 정의라는 감각을 자라게 했다.


그 부조리의 식탁이 있었기에,

나는 오늘 더 심연하게 묻는다.
우리는 어떤 식탁을 만들고 있는가?
누구를 초대하고, 무엇을 권하며,

어떤 말을 남기고 있는가?



그래서, 나는 오늘 내가 앉아온 식탁들을

천천히 펼쳐보려 한다.




혼자만의 식탁


혼밥, 나와의 대화


도쿄에서 혼자 밥을 먹는 일은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일본의 식당은 손님이 자리를 고르지 않는다.

입구에서 인원을 말하면 직원이 자리를 정해준다.

혼자든 여럿이든, 그저 자연스럽게 안내받아 앉는다.

누구도 옆 테이블을 눈치 주거나 눈길 주지 않는다.

그 평등한 환대 속에서 혼밥은 하나의 당연한 풍경이 된다.


나는 혼밥을 대충 때우지 않는다.

적게 먹더라도, 정갈하게 먹는다.

현미밥이나 달걀프라이 같은 단출한 식사라도,

그 옆에 신선한 채소와 단백질을 곁들여 놓는다.


그릇을 위생적으로 정리해 두고 마주 앉을 때면,

“내가 나를 존중하는구나” 하는 잔잔한 안도감이 스며든다.


결혼 15년 동안 내 몸이 크게 변하지 않은 것도

이 작은 습관이 지켜준 선물일지 모른다.

168cm의 키, 55 사이즈의 옷, 적당한 근력.

아이들을 돌보고 요가를 즐기는 데 부담 없는 몸.

혼밥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삶이 흐트러졌을 때 빛을 발하는,

내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일상의 의식이었다.


예전에는 화려함을 중요시했다.

상이 넉넉해야 마음도 부유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도쿄에 와서야 알았다.

작은 밥상에도 충만이 있고,

고요한 혼자만의 식탁에도 감사가 깃든다는 걸.


지금도 누군가에게 내어줄 밥상은 풍성하게 차린다.

국제학교 엄마들은 내 도시락을 보고 말한다.

“푸짐하고 다양하게 싸주는 걸로 유명하셔요.

참 부지런하세요.”


정갈함과 푸짐함, 음식을 먹는 이를 향한 다정한 마음.


음식을 차려내는 식탁과, 누군가에게 건네는 식탁은

그 작은 차이만큼이나 서로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혼밥은 결국 나와의 대화였다.
“오늘 너는 어떤 상태니, 그래서 뭘 먹고 싶니?”


스스로에게 묻고, 그 대답을 존중하는 시간.



Q. 당신은 혼자 먹는 밥상에서 무엇을 가장 신경 쓰나요?

음식의 맛일까요, 건강일까요, 아니면 그날의 기분일까요?





둘의 식탁


취향을 나누는 자리


남편과 나는 술을 잘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음식에 곁들일 와인, 맥주, 양주는 즐긴다.

"이건 어떤 음식이랑 어울릴까?"를

함께 이야기하며 웃는 순간, 그것만으로도 대화가 된다.


남편은 맛집 탐색가다.

주어진 대로 먹던 그는 나를 만나며 변했다고 했다.

리스트를 만들어두고, 새로 찾은 가게에 나를 데려간다.

덕분에 도쿄 구석구석을 발로 밟으며

새로운 식탁을 경험했다.

남편이 아니었다면 TV에서만 보던 장소였을 것이다.


나는 원래 취향껏 고루 먹을 수 있는, 집밥을 좋아한다.

식탁에서도 도전을 좋아하던 다혈, 담즙질의 나는

안정과 편안함의 우울, 점액질과 섞여간다.


그런데 남편 덕분에 내 식탁에

여전히 새로운 경험이 겹겹이 쌓이고 있다.

내 편안함과 그의 탐험심이 만나고 섞여서

도쿄라는 도시가 우리의 부부 풍경이 되었다.


그는 늘 “자기 먹고 싶은 거 아무거나”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완벽한 점액질, 우울질의 태도.

나는 우선순위가 확실한 스타일이지만

뭐든 잘 먹는 편이라, 때론 즐기며 맞춰왔다.


이 작은 균형이 15년 부부 생활을

평화롭게 이어온 비결이 아닐까.


둘이 앉는 식탁은 결국 취향을 맞추고 조율하며

배려하는 자리였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만들어낸 합의.


매일의 밥 한 끼가 모여,

부부라는 공동체에게 살아가며 맞닥뜨릴

수많은 의사결정의 연습장이 되어준 것 같다.



Q. 당신은 연인이나 가족과 식탁을 나눌 때,

어떤 순간에 ‘우리가 맞춰가고 있구나’라고 느끼나요?




식탁이 협상의 기술이 될 때


내가 배운 ‘둘이서의 식탁’은 부부 사이만이 아니었다.
첫아이 세 살 무렵, 방송국 일을 잠시 쉬고

어린이도서 출판사 한솔교육에서 4개월간 일한 적이 있다.


책 읽어주기를 사명처럼 여기던 나는

아이 덕분에 다양한 동화 전집을 들여놓았고,

그 계기로, 교사이자 도서 판매 일을 맡게 되었다.

신입이었지만 연속 3개월 ‘영업퀸’ 상패를 받았고,

포상휴가로 마닐라까지 다녀왔다.


그때 배운 건 단순히 아이에게 책 읽히기 기술이나,

책을 멋지게 파는 말솜씨가 아니라,

엄마들의 마음을 여는 식탁의 기술이었다.


두 사람이 만날 때는 단순히 커피만 마시지 않았다.

꼭 케이크나 작은 디저트를 곁들였다.

달콤한 무언가가 대화를 부드럽게 열어주었고,

상대는 마음을 더 쉽게 내주었다.

음식은 설득의 보조 언어였다.


출판사에서는 우수 고객들을 초대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는 행사를 매달 열었다.

맛있는 식탁 위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영업은 자연스럽게 풀렸다.


또 나를 설득하려 다가왔던 다단계 엄마들 역시 하나같이,

호두파이나 피자 같은 음식을 구워 먼저 선물하곤 했다.


나는 몸으로 실감했다.

둘이서의 식탁은 친밀감을 얹은 협상의 도구라는 것을.




여럿의 식탁


달고나 바자회의 연대


학교 바자회에서 우리는 달고나를 팔았다.
앞에서는 불 위에서 모양을 찍고,
옆에서는 부지런히 포장을 하고,
뒤에서는 계산을 맞추며 아이들과 눈을 맞췄다.


"어휴, 이건 금이 가서 못 내겠네."
"아니야, 그냥 양 좀 더 얹어주면 되지."
"그래도 자선행사인데 기왕이면 남는 게 있어야지."
"애들인데, 기분 좋게 가져가게 하는 게 낫지."


작은 달고나 하나를 두고도 말들이 오갔다.

모양은 삐뚤어졌어도,

봉사의 자리니만큼 마음만은 반듯하게 맞추려는 자리였다.


그때였다.
금이 간 달고나를 받은 아이가 방긋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더 재밌게 먹을 수 있어요!"


순간, 우리 어른들이 그토록 따지던 계산과 규칙은
그 아이의 웃음 앞에서 힘을 잃었다.


우리가 놓치고 있던 건,
"맛있게, 즐겁게 나누면 되는 거지" 하는 단순한 진리였다.


여럿의 식탁은 그렇게 연대를 배우는 자리였다.
누군가는 계산기를 두드렸고,
누군가는 정을 얹어주었지만,
결국 모두가 같은 자리에서 함께 웃고 있었다.


그리고 한 엄마가 툭 던졌다.
"봐요, 우리 말싸움보다 애들 한마디가 낫다니까~"


모두가 빵 터지며 다시 달고나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웃음 속에서 우리는 이미 이익도, 모양도 넘어선

같은 팀이었다.



Q. 당신이 경험한 ‘여럿의 식탁’은

어떤 연대의 순간을 남겼나요?


금이 간 달고나처럼, 조금 부족했지만

더 즐겁게 나눴던 경험이 있나요?



금이 간 달고나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겠다' 던 아이의 한마디.


특별한 식탁


방송국 회식에서 배운 꿈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식탁을 꼽으라면,

2007년 12월 31일 밤 방송국 회식이 떠오른다.


그날은 라디오 현장 취재가 있던 날이었다.
겨울밤 청계천의 찬 바람 속에서,

시민들의 새해 소망을 묻고,
자정이 되자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의 첫울음을 생방송으로 전했다.
부모의 떨리는 목소리까지 마이크에 담겼다.


방송을 마친 뒤, 방송국 근처 고깃집으로 향했다.
개그맨들과 PD들, 리포터였던 나까지 함께한 자리.
고기가 지글지글 익는 소리, 소주잔이 부딪히는 소리,
개그맨들의 큰 액션이 공간을 채웠다.


긴장 속에 나는 젓가락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때 내 맞은편에 앉은 한 개그우먼이
조용히 무명 시절의 밤들을 꺼내놓았다.


목소리를 단단히 하기 위해 반복하던 발성 연습,
배 위에 텔레비전을 올려놓고 호흡을 다잡던 고독한 시간들.

그리고 유명 연예인의 무명시절 이야기.


“그 지난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어요.

포기하지 마요, 특별한 건 1%야.
특별한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끝내 버티는 사람이 꿈에 닿는 거예요


그녀의 말은 그날의 고깃덩이보다 더 뜨겁게 다가왔다.


그 순간 알았다.
평범한 나도 포기하지 않고 버텨왔기에
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는 걸.


꿈은 행운처럼 불쑥 나타나는 화려한 순간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이어간 평범한 길 위에서

조금씩 빛나고 모이는 것임을.


그 회식은 내 인생의 좌표를 바꾼 식탁이었다.




수능시험장의 초콜릿


나에게 초콜릿은 행운의 상징이었다.


수능시험 날, 매 과목 시험 직전에
작은 ABC 초콜릿 한 조각을 조심스레 입에 넣었다.
달콤함이 혀끝을 감쌀 때, 눈을 감고 다짐했다.
“실수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


시험과목이 끝날 때마다 두 손을 모았다.
“나는 방금 최선을 다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매시간을 마무리했다.


그 단단한 의식 덕분이었을까.

전체 점수에서 큰 실수 없이,
언어 영역은 전국 1% 안에 드는 점수를 얻었고,
그 결과, 특차 응시 자격까지 주어졌다.


지금은 초콜릿을 자주 먹지 않지만,
그날의 작은 조각은 여전히 내게 행운의 심벌로 남아 있다.


달콤함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다잡아주던 의식의 힘.
작은 한 조각이 나를 붙들어 준 식탁.



Q. 당신에게도 ‘행운의 음식’이 있나요?

시험, 면접, 중요한 순간마다 찾게 되는,

혹은 긴장 때문에 오히려 멀리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행복의 식탁 ― 사랑의 방식


어린 시절, 엄마는 삼 남매와 아버지의 도시락을 날마다

정성껏 싸주셨다.

빵과 떡도 늘 직접 구워내셨으니,

우리 가족에게 '급식'은 오래도록 낯선 단어였다.


어떤 시절에는 1인 2개의 도시락이 필요하던 시기도 있었다.

엄마의 새벽은 늘 분주했고,

그 손끝에서 차려진 반찬은 하루의 시작이자

사랑의 증표였다.


돌이켜보면, 도쿄에서 매일 아이들 도시락을 준비하는

나의 일상도

엄마의 도시락 전쟁에 비하면 그저 새발의 피일뿐이다.


세 자녀를 다 출가시키신 후,

부모님은 남이 해주는 밥을 즐기신다.

요즘 두 분의 취미는 맛집 탐방이다.

평생 가족을 위해 음식을 내어오시던 손에서

이제야 조금의 쉼과 여유가 묻어난다.


아버지는 외식 자리에서 늘 엄마를 배려하셨다.

우리가 입을 빼죽 내밀던 민물매운탕집을 자주 찾으신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를 위한 선택이었다.

엄마는 민물매운탕을 누구보다 좋아하셨으니까.


그건 단순한 메뉴가 아니라,

육아와 살림으로 지친 아내를 위로하는

아버지만의 사랑의 방식이었다.


내가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아버지는 우리 집으로 오셔서 직접 닭볶음탕을 끓여주셨다.

사위와 엄마가 각자 바빠 내 곁에 없던 날,

따끈한 국물은 온 집안을 온기로 채웠고

그날의 식탁은 아버지의 따뜻한 온기처럼,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았다.


식사 후, 아버지와 함께 걸었던 공원의 길.

어린 날, 식탁 위에서는 늘 엄하셨던 그분이

그날은 둘째 딸만을 위해 요리를 해주시고

조용히 내 속도에 맞춰 걸어주셨다.


그날, 함께 하는 식탁의 따뜻함이 내 심장을 파고들었다.

아버지가 내게 남겨주고 싶었던 진짜 모습은,

음식 속에 담긴 바로 이 따뜻한 사랑이었다.



Q. 당신이 기억하는 ‘사랑의 식탁’을 이야기로 나눠주세요.




작은 식탁의 무게


돌아보면 내 삶을 움직인 건 늘 작은 식탁이었다.
혼밥은 나를 돌보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둘이서의 식탁은 취향을 맞추는 법을 알려주었고,
여럿의 식탁은 배려의 질서를 익히게 했다.
특별한 식탁에서는 꿈을 버리지 않는 힘을 배웠다.


식탁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자리가 아니었다.
오늘 내가 어떤 태도로 앉았는지가 내일의 나를 바꿨다.


금이 간 달고나도 함께 웃으며 나눴을 때,

찰나의 순간이 더 달콤해졌다는 사실처럼.



작은 식탁 위의 큰 깨달음


혼밥은 외로움이 아니라 나를 존중하는 용기였다.
둘이서의 식탁은 말이 아니라 온도로 맞추는 합의였다.
여럿의 식탁은 배려가 만들어낸 질서였다.
그리고 특별한 식탁들에서는 내 인생의 좌표를 바꿀

힌트를 얻었다.


내 인생은 늘 작은 식탁에서 결정되었다.
오늘 내가 누구와, 어떤 태도로 앉았는지가
내일의 풍경을 바꾸었다.


그리고 언젠가 돌아보면,
그 모든 순간은 한 끼의 자리에서 시작된,
아주 작은 기적이었음을

알게 되리라.




독자에게


당신에게 혼밥은 어떤 의미인가요?

자유인가요, 고독인가요?


둘이서의 식탁에서 당신은 어떤 온도를 나누고 있나요?
여럿의 자리에서 당신은 어떤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나요?


그리고 인생에서 방향을 바꿔준

‘특별한 식탁’은 언제였나요?




다음 편 예고


마지막 11화 〈에필로그 ― 다시 식탁으로〉
결국 모든 이야기는 다시 식탁으로 돌아간다.
이제까지의 여정을 정리하며,


왜 우리는 끝내 식탁에 앉아야 하는지

함께 이야기해 보려 한다.


거기서 우리는 또 한 번,

**‘내가 만든 식탁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를 묻게 될 것이다.

우리는 결국, 우리가 앉는 식탁의 얼굴을 닮아간다.


에필로그의 마지막 식탁에서 다시 만나요 :)



<함께 보면 좋은 책, 영화, 음악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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