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자의식 vs 깊은 자기 이해
우리는 흔히 자존감과 자의식을 혼동한다.
비슷해 보이지만, 그 시작점이 다르다.
강한 자의식은 나를 지키지만,
깊은 자기 이해는 나를 치유한다.
글을 쓰며 나는 그 둘의 차이를 배웠다.
타인을 설득하려던 문장 속에서
결국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된 과정.
그것이 내가 글을 계속 쓰는 이유이자,
존재의 이유였다.
글을 쓰며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작품도, 명예도, 팔로워도 아니었다.
상담도, 타인의 평가도 아니었다.
오직 나 스스로,
내가 생각보다 꽤 괜찮은 사람임을 알게 된 일이었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처음엔 누군가에게 닿고 싶어서,
때로는 내 안의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그런데 쓰면 쓸수록,
나란 사람의 존재 이유가 선명해졌다.
나는 늘 상상과 감정이 많은 사람이라 여겼다.
직감이 예민한 대신,
타인의 감정에 쉽게 물들어 흔들리고
마음이 깊어서 자주 상처받는 사람이라 믿었다.
하지만 글을 쓰며 대화를 나누고,
내가 쓴 문장을 다시 읽다 보면 깨닫게 된다.
글을 읽는 일과 쓰는 일은 닮았지만, 결이 다르다.
읽는 일은 타인의 언어로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고,
쓰는 일은 나의 언어로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읽기는 공감에서 시작되지만,
쓰기는 그 공감을 내 안에서 다시 빚어내는 일이다.
그래서 더 어렵고, 그래서 더 진실하다.
글을 읽는 일은 타인의 세계를 여행하는 일이고,
글을 쓰는 일은 내 세계의 지도를 그리는 일이다.
읽으며 위로받던 내가,
어느새 쓰며 누군가를 위로하게 될 때,
그때 비로소 '읽는 사람'에서
'살아 있는 언어를 다루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휘둘린 게 아니라 공명했고,
흔들린 게 아니라
조용히 누군가의 마음을 치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내 언어는 누군가를 설득하는 힘이 아니라,
마음을 맑히는 힘을 품고 있었다.
때로는 위로가 되었고,
때로는 거울처럼 상대의 진심을 비춰주었다.
그건 마법 같았다.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마음이 내 말 속에서
조금씩 편안해지는 걸 느낄 때마다.
나는 사랑을 쫓지 않고,
사랑을 회복시켜온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나의 언어와 마음이 이미 누군가를 밝히고 있었다.
그 밝음이 다시 나를 비추며 나를 맑혔다.
상대와 나의 마음바다를 떠돌던 부유물들이
가라앉고 맑아지는 과정을 확인하는 가장
정직하고 강력한 무기는 바로, 글쓰기였다.
글을 쓰며 나는 점점 단단해졌다.
타인에게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서 위로받는 법을 배웠다.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고,
그걸 증명하는 건 내 문장들이었다.
"나는 사람을 치유한 게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려는 내 마음을 치유해 왔다."
문장을 쓸 때마다 마음이 조금 더 맑아졌다.
그건 스스로 써온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선물이었다.
하지만 읽는 사람 또한,
그 마음의 길 위에서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다.
당신은 '읽는 사람'인가요, '쓰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그 사이 어딘가에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