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에게도 감사할 수 있을 때

고통을 의미로 바꾸는 법

by 희유

상처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 상처를 끝까지 '이해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잊으려 애쓰고, 몇몇은 되돌리려 한다.
Serena는 그 둘 사이에 멈춰, 이해하려 했다.
지우지 않고, 되돌리지 않고,

단지 그 상처의 문장을 다시 써보려 했다.



심리학에서는 그것을 인지적 재구성이라 부른다.
사건을 바꾸는 대신, 그 사건의 해석을 바꾸는 일.
하지만 Serena에게

그것은 단지 마음의 언어를 새로 배우는 일이었다.
그녀는 상처를 덮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상처가 남긴 '의도'를,

한 줄 한 줄 천천히 읽어내려 했다.




빅터 프랭클은 말했다.
"인간은 고통을 피할 수 없지만,

그 고통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Serena는 그 문장을 오래 붙잡았다.
이제야 그 뜻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상처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의미가 생기는 순간 다른 이름으로 남는 것.





한때 Serena는 떠나간 사람을 미워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알게 되었다.
그 미움은 그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사랑받지 못했다고 믿던 나'를 향한 미움이었다.


그날 밤, 그녀는 오래된 사진을 바라보다 문득 중얼거렸다.

"그때의 나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말이 끝나자, 방 안의 공기가 느리게 흘렀다.

그건 연민이 아니라,

처음으로 자신을 바라본 순간이었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미움 속에서 결국 가장 다치고 있던 건,

언제나 우리 자신이었다.




심리학에서는 그것을

*애착 전환(Attachment Reorientation)*이라 한다.
Serena는 더 이상 '왜 나를 버렸냐'보다
'내가 얼마나 견디려 했는가'를 생각했다.

사랑의 방향이 타인에게서 자신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칼 융은 말했다.
"상처받은 곳에 당신의 진정한 자아가 깃든다."


Serena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
상처는 약점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
나를 '나'로 구분 짓게 만든 경계선이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과정을

*통합적 회복(Integrative Healing)*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그 말을 다르게 정의한다.
"삶을 완성한다는 건,

고통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고통을 포함하는 일이다."
Serena는 이제 상처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 상처 덕분에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Serena는 오늘, 조용히 중얼거린다.
"고마워, 나를 아프게 했던 시간들아."

"너희 덕분에 나는,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 문장을 배웠으니까."

이제 그녀는 그 문장을,

삶 속에서 조용히 완성해가고 있다.


그녀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상처는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새 언어로 번역되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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