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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랑무 Jul 18. 2024

적당하고 모호하고 아슬아슬한 線

호의도 작당히, 적의도 눈치껏

                                  

지켜야 할 선(線)이 있다는 말을 한다. 눈에 보이게 그어 놓은 금도 선이라 하겠고, 눈에 보이지 않는 금도 선이라고 말하고 쓴다. 어렸을 때는 주로 눈에 보이는 선으로 놀았다. 고무줄 선, 하늘땅별땅놀이(땅따먹기) 선, 달리기 선, 짝과 나를 가르는 경계, 책상에 그어놓은 선…. 선을 밟고 지나야 이기는 규칙이 있는가 하면, 선을 밟지 않아야 하는 규칙도 있다. 실력에 따라 점점 높아지는 선을 넘기도 한다. 준비물은 별로 없다. 작은 돌 하나나 될까, 긴 고무줄 하나면 될까. 선 하나로 땅을 따기도, 뺏기도 한다. 선 하나로 하늘을 뒤집어 넘기도 했다. 팔꿈치로 짝을 찌르기도 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움직이는 대로, 뛰는 대로 넘나들었던 선이다. 보이는 선은 대체로 규칙만 따라가면 되는 놀이이자 어울림이었다.  

    

놀다가 지치면 남의 집 담에 기대어 훌쩍 고개 들어 올린 해바라기 씨를 탐하기도 했다. 넘어갈 수 있게 낮은 담이면 십중팔구 그 집 해바라기는 듬성듬성 이빨 빠진 할아버지 함박웃음 되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담 넘어 담을 훌쩍 뛰어다니는 아이도 있었다. 영화에서처럼 무슨 추격신을 벌이는 건 아니었지만, 종일 놀고도 힘이 남는 아이들에겐 무엇도 놀이가 되었다. 선만 지키면 다칠 일은 없었지만, 삐끗 잘못 디뎠다가는 크게 다치기도 했다. 겁 없는 막냇동생이 그랬다.      


간혹 어느 집이 담 위에 깨진 병을 꽂아놓는 대대적인 공사를 한다거나, 쇠꼬챙이 같은 걸 꽂아 놓거나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을 거다. 넝쿨장미는 그런대로 보기나 좋았지. 선을 지키라는 상징으로 보기에 깨진 유리나 쇠꼬챙이는 보기만 해도 너무 아파서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했다. 그곳을 넘본다는 건 사슬 철컹이며 날뛰는 “개조심”의 개만큼이나 위험했다. 실물로 영접하는, 보이는 선은 그렇게 단호했다. 선을 넘볼 생각일랑 접어. 다쳐. 불편한 마음을 에둘러 숨길 이유가 없던 선이다.     

 

커서는 지켜야 할 선이 많아졌다.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도 지킬 예의가 있다. 내키는 대로 해도 되었던 것의 유효기간은 어려서 끝났다. 사회적 위치, 개인의 책임을 지고 어른이 되어가는 우리가 지켜야 하는 선은 보이지 않아서 생각을 가늠하기 어렵다. 이렇게 해야 할까, 저렇게 하면 될까. 그야말로 알아서 적당히, 모호하고 아슬아슬하게 지켜야 하는 선은 고단수다. 그걸 말로 해야 알아, 딱 꼬집어 얘기해 주는 사람이 없다. 도리상, 예의상 호의도 적당히, 적의도 눈치껏, 서로 조금의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는 선에서 기분 나쁘지 않게. 각자 흩어진 마음 간극들의 총합이 선인 것만 같다. 대놓고 말하기 불편하니 알아서 지켜주면 고맙겠다고 線이 조용히 말한다. 어떻게 하면 세련되게 선을 그을까 방법을 궁리 중이다. 어른이 되는 건 서로의 심사만큼이나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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