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께와 깊이에 따라 굴절되고 변온하는
아침에 니트를 입으려니 올이 빠져 작은 구멍이 나 있다. 급한 대로 성근 바느질을 한다. 세탁소에 가져가 짜깁기를 하면 감쪽같아질 텐데 입기는 해야겠고 바쁘니까 구멍만 안 보이게 살짝. 엄마가 구멍 난 양말을 깁는 걸 어려서 많이 봤다. 바느질은 나름의 방식이 있었다. 실끝에 살짝 침을 묻혀 바늘귀를 꿴다. 몇 번의 헛방이 있지만 실은 어떻게든 바늘귀를 통과한다. 매듭을 짓고 바늘을 한두 번 머리에다 쓸고 나서 바느질을 시작한다. 위에서 아래, 옆에서 옆, 사선에서 사선으로 이어가며 둥글게 모양을 만들며 조금씩 당겨 조여 간다. 구멍이 클수록 다양한 길로 어긋나며 감추어지지만, 대부분은 이런 방법으로 꿰매면 어지간히 봐줄 만해진다. 손에 만져지는 감촉이나 흔적은 구멍 없을 때만 못하다. 그래도 그런대로 괜찮다.
엄마처럼 나도 바느질을 한다. 봐온 순서대로, 얼기설기 실을 엮어 살짝 당겨가며 구멍을 메운다. 살림에 실용적인 바느질 말고도 학창 시절에는 바느질을 따로 배웠다. 홈질, 박음질, 감침질, 공그르기, 새발뜨기 등등 상황에 따라 바느질은 유용했다. 간단히 이어 붙일 요량이면 드문드문 홈질, 당겨도 흔적이 남지 않게 하려면 반 발짝씩 오가는 걸음 반복 박음질, 바느질이 안 보이도록 하자면 공그르기…. 허리 고무줄이 늘어나 고무줄을 바꿔 끼울 때도 없는 구멍을 냈다면 바느질이 필요했다. 바지나 소매 단을 길이에 맞게 줄일 때도, 단추가 떨어져 다시 달 때도 못하면 불편한 게 바느질이다. 요즘은 대부분 세탁소에서 다 하지만 말이다.
큰아이 고3 때 퀼트를 잠깐 했다.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었고, 퀼트를 하는 지인 따라갔다가 마음에 드는 퀼트가방 완제품이 생각보다 비싸서 재료와 도안이 들어있는 패키지를 샀다. 가격이 1/4이니 그 가격이면 어찌어찌 만들어보자 하고 겁도 없이 대들었다. 바느질하느라 죽는 줄 알았다. 퀼트 바늘은 짧을뿐더러 도안이 하나같이 자그마해서 시접 분을 안으로 넣어가며 바늘이 다녀간 줄 모르게 바느질을 하자니 목도 아프고, 눈도 침침해졌다. 재봉틀 없이 손끝에서 탄생하는 퀼트가방이 아무리 비싸도 만든 이의 품과 노고를 생각하면 받을 만한 가격이라는 생각도 그때 했다. 작품 급의 가방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바느질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제 존재를 드러낸다. 만나는 천이 어떤지에 따라 바늘의 크기와 굵기, 길이도 다르다. 이불 홑청을 꿰매려면 큰 바늘로 굵은 면실을, 바짓단을 꿰맨다면 신발 위에서 부딪치며 다녀야 하니 얇고 질긴 실을, 가방을 만들려면 짧은바늘에 질긴 실을 대상의 색에 맞게. 덧대는 천의 재질이 제각각이어서 시접분도 그에 따라 알맞게 남겨야 한다. 드러내야 하는 바느질이면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뜬다. 그런 바느질은 대부분 안쪽도 단정하다. 바느질을 하는 이의 솜씨와 마음씨는 바느질을 보면 드러난다.
아침에 꿰맨 바느질 자리를 만진다. 바쁘고 귀찮은 마음 보탠 작은 딱지 같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나만 아는 흔적이다. 어렸을 땐 엄마가 하는 바느질을 보며 고거 참 재미있겠다고 입을 다셨다. 몇 번의 스쳐감으로 구멍이 메워지는 기술이 신기했다. 엄마가 된 내가 그 전장에서 같은 방법으로 바늘 싸움을 한다. 불같이 일어나는 마음을, 끝장을 보겠다는 마음을 휘두른다. 바늘에 찔리고야 정신이 번쩍 난다. 가보지 않았을 땐 신기루 같은 삶은 살아보니 두께와 깊이에 따라 굴절되고 변온하는 바늘이 낸 길이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