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리역을 향해 가는 기차 안은 덥다.
혼자 가는 길, 입석이다.
푸르게 영그는 벼는 마치 바람 따라 올올이 움직이는 융단 같다.
먼 데서 온 손님치레하듯 허리 펼새 없이 굽은 등으로 이바지하는 남도 평야는 끝 간 데도 없는데.
하늘을 담은 논, 하늘의 뜻이라 여긴다.
김영동이 대금 가락에 읊조리는 노랫말을 넘긴다.
덜컹, 음 하나가 떨어진다.
동무라고는 손에 잡히는 마이마이 하나.
기어이 잡아 올리는 음 밖으로 백로가 희끗 날개를 편다.
까만 줄 이어폰을 고수하다 어디선지 잃어버린 후
케이스 커버만 열면 자동 연결되는 블루투스로 줄 없이도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본다.
이게 흔하지 않았을 때 길을 가며 혼잣말 하는 사람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던 나다.
카세트 테잎이 없어도 멜론 가입해 깨끗한 음질로 제한없이 듣는 음악,
OTT서비스로 밤낮없이 즐길 수 있게 된 영상은 차고 넘칠 정도다.
밖을 보지 않아도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고,
멀리 가지 않아도 내 손 안의 세상은 부족함이 없다.
늘어지고, 튀는 가난한 잡음은 매끄러운 현실을 더욱 북돋고,
손 안의 마이마이가 세상의 전부였을 때를 미련없이 지운다.
백로가 다녀가는 논만은 변함이 없나,
멈추어야 보이는 빈 들판의 맨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