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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보물상자

변방의 먼지들

by 달랑무

쉬는 날은 그저 뒹굴뒹굴해야지 다짐하며 자리에서 뭉그적거려 보지만 해가 떴는데 그러기도 쉽잖다. 저들끼리 몸을 붙여 시들어가는 귤은 갈아서 스프레드로, 기운 잃은 배는 깍둑깍둑 썰어 냉동실에 넣는다. 김치에 갈아 넣거나 감기에 끓여 쓸 양으로. 그리고 반은 졸여뒀다가 고기 잴 때 쓰려고 나박나박 썬다.


배 졸임을 하고, 고구마도 굽고, 아침도 먹는다. 청소 좀 하고 나니 한낮이다. 집에 들어오는 볕이 깊다. 그 결에 구석에 쌓인 먼지 부옇다. 청소라고 해봐야 고양이 세수하듯 했으니 구석구석 하지 못하고 사는 건 뭐 그러려니 한다. 젊어서는 누구보다 깔끔한 체를 하였는데 아이들이 다 크고 나니 느슨해진다.


보다 못해 닦기 시작했는데 닦다 보니 눈감으면 그뿐인 구석까지 손을 바라는 일이 참 많구나, 생각한다. 바람을 일으키며 들어오는 식구들을 피해 몸이 원체 가벼운 먼지들은 구석으로 몰려가는 법. 자주 닿고 쓰고 움직이는 곳에는 먼지가 있으려도 없지만, 손이 잘 닿지 않는 책상 구석, 침대 밑, 소파 밑, 식탁 밑, 싱크대 주변은 손이 닿지 않은 만큼 밀려와 가라앉은 시간의 더께들이 수북하다.


가운데를 피해 주변으로 밀려간 가벼운 먼지들은 움직이지 않는 것들의 맨 밑바닥에서 손길이 닿을 때까지 그렇게 쌓여갈 것이다. 누구보다 가벼워서, 눈에 보이지 않아서 주변으로 밀려가고 있는 존재들에겐 눈 돌릴 겨를 없이 살고 있으니까. 그러다 어느 날 눈을 주고 보게 된, 한 번으로 닦이지도 않을 먼지들은 시간을 축적한 만큼의 두께로 밀도와 영역을 높이고 넓혀간다.


마음 밑바닥이라고 다를까? 밖에선 바람이 불고, 해가 들고, 비가 내려 먼지를 쓸어가도 구석엔 미처 돌보지 못했던 자디잔 마음의 먼지들이 나풀댄다. 기어이 구겨 넣고, 비죽일라치면 눌러 내렸던 마음의 먼지들에 볕을 들여보자. 혹 아나. 잃어버린 보물상자를 찾게 될지. 보이지 않는 무수히 많은 것들에 기대 사는 우리이기에.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왜 가장 가까이 있는 게 가장 보기 어려운 걸까?"

『이처럼 사소한 것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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