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음악과 저녁스케치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퇴근하면서 듣는 전기현의 멘트다. 한참 저녁 지을 다섯 시에서 여섯 시 사이. 아이는 놀이터에서 오래 놀다 집에 가기 아쉬울 어스름 저녁 시간. 나는 마늘을 빻고, 양파를 벗기고, 파를 다듬으며 무료하다 하기도 뭐 한 그런 시간에 <배미향의 저녁스케치>나 <전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에 주파수를 맞췄다. '저녁을 지었다'라고 말하고 싶은 데는 이유가 있다. 밥은 쌀만으로 지어지는 게 아니라서. 씻고, 조물 거리고, 양념으로 치고, 아린 맛 부드럽게, 질긴 건 폭 끓이고, 드문 드문 시들어서 버리기도 아까운 건 쫑쫑 다듬어 서로 어울리게 지어야 맛이 나기에.
그러느라 저녁시간은, 창밖 노는 아이들 확인하며 밥을 짓기 바빴다. 손은 바빴지만 귀는 호강이었다. 노동이랄 걸 즐겁게 하고 싶은 방편이기도 했지만, 저무는 시간과 따뜻한 밥, 낮고 오래된 음악은 잘 어울렸다. 물 흐르는 소리, 달그락 그릇 부딪는 소리, 김이 오르며 추추추 돌아가는 소리의 사이를 물들이며 음악이 흘렀다. 놀이터를 내려다보며 아이들을 부른다. OO이들 이제 들어와야지. 얼른 들어와 밥 먹자. 흙 놀이 좋아하던 아이들이 두꺼비 헌 집을 새집과 바꾸려다 말고 위를 올려다본다. 나는 손을 흔든다.
흙을 만지던 손을 털고 닦으며 부산스럽게 들어오던 아이들도 들었을 세상의 모든 음악과 저녁스케치. 밥 짓는 냄새 따라 홀랑거리며 귀를 넘나들던 세상의 모든 음악이 아이들에게도 스몄을까. 다 자란 아이에게 물었다. 기억하느냐고. 엄마 저녁밥 할 때 듣던 음악이잖아. 그랬지. 소리에도 저마다의 색과 陰陽이 있다. 어떨 땐 조형물 같은 양감이 있다고도 느낀다. 학생시절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나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을 때와는 질감이 전혀 다른. 가끔 철 지나 그들의 시그널 음악이 단번에 80년대의 어린 나를 부르면 그땐 몰랐던 열띤 철부지 여운이 훌쩍 월담한다. 단번에 섞인다.
아이를 낳고 어른이 되어 무채를 치고 마늘을 빻을 때, 양파를 다듬을 때, 계란을 칠 때, 쌀을 씻을 때, 부딪치고 섞이는 사이에 일어나는 소리는 삶의 보편적 소리라고 짐작한다. 때에 따라 얕고 깊은 소리, 길고도 짧은 한숨 같은 소리, 불규칙적인 반복이 내는 짧고 긴, 높고 낮은 소리는 누구나 내는, 어디에나 있는 소리라고. 유난한 나를 떠나 ‘모든 것에 두루 미치거나 통하는’ 이 소리의 조각들과 세상의 모든 음악과 저녁스케치는 어딘지 닮아있다. 종종거리는 발끝에 묻은 그날의 리듬과 색과 소리를 버무려 누구나 지을 저녁을, 나는 지었다.
서쪽 창으로 해 물들고 밤이 이어 오려할 즈음, 긴 하루를 지낸 이들에게 보내는 세상의 모든 음악과 저녁스케치를 벗해 저녁을 짓던 저물녘의 나를 바라본다. 물에 젖은 손으로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던 내가 보인다. 마늘 냄새 밴 손으로 흙 묻은 아이의 손을 조몰락거리며 씻기는 나를 본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을 뜨고, 반찬을 얹으며 아이의 입에 와구와구 들어가는 모양을 보는 나는 배부르다. 세상 모든 음악처럼 어울 대던 지난날의 저녁 스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