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의 앞날

심심 찬란한 매력의

by 달랑무

집에 당장 먹을 게 없을 때 쉽게 떠오르는 건 카레다. 감자랑 양파는 필수이고, 당근은 없어도 그만, 이외의 재료를 몽땅 깍둑 썰어내어 끓인다. 어떨 땐 기분에 따라 물대신 토마토를 넣기도 하고, 단호박을 넣기도 한다. 단호박은 끓일수록 뭉그러져 카레의 색과 맛을 깊게 한다. 토마토를 넣어 색다른 풍미를 꾀하기도 한다. 밥과 김치만 있으면 어떤 성찬 못지않은 반인스턴트 식품이면서도 나름 건강도 생각한다는 위로로 마음을 달래주는 음식, 카레.

집에 반찬 할 게 뭐가 있지? 생각할 때 감자와 양파, 대파만 있으면 뭐라도 한다. 찌개도 되고, 국도 되고, 밥도 되고, 조림도 된다. 그들은 기본으로 있어야 되는 식재료다. 어느 기사에서 보니 감자와 토마토가 기후위기로 사라질 작물 중 하나라고 한다. 눈을 의심하며 다시 봐도 감자란다. 토마토란다. 내 살아생전에 사라지진 않겠지만, ‘사라질 위기’라는 말만으로도 슬프고 배고프다.


작년만 해도 노모가 씨감자 심는 법을 알려주며 화단에 재미 삼아 심어 감자알이 생기는 걸 한 번 봐보라며 권했었다. 게으른 탓에 시도는 못했지만, 먹을 때를 놓쳐 싹이 난 고구마를 화단에 던져놓으니 속살을 양분 삼아 세를 불려 가며 무성하게 뻗어가는 양이 보기에 좋았다. 땅의 열매라는 뜻으로 제주에서는 감자를 地實이라고도 부른다. 땅 속을 뻗어가며 자라는 감자는 별다른 영양분 없이도 무엇과도 어울리는 심심 찬란한 매력을 지녔다.


지위고하를 떠나 누구의 입에나 어울리고, 어떤 재료와도 섞이며,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재료가 감자다. 쫀득한 전분으론 밀가루 이상의 맛을 내기도 한다. 땅의 기력이 다해 감자를 심을 수 없는 날이 온다면 그게 어디 감자만으로 끝나는 일일까. 땅을 집 삼아 자라는 곡식이 하나둘 사라지는 날이 온다는 건 초록이 사라진다는 뜻일 거고, 초록을 볼 수 없다는 상상만으로도 내 모든 온기를 빼앗기는 것만 같아 벌써부터 춥기가 그지없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당신은 나의 시끌 솔메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