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딱 걸렸어~
내게는 친구가 떠준 조끼와 모자, 볼레로와 모티브가 있다. 지난겨울 동네 편집샵을 구경하며 집으로 오던 길이었다. 가게 앞을 지나오는데 화사한 모티브가 창 앞에 무심하게 걸쳐있는데 색감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들어가서 구경하고 그날은 그냥 왔는데, 집에 오니 자꾸 생각이 난다. 며칠 후 가게 가서 물어보니 주문을 해야 한단다. 실 한 다발에 삼천 원씩 스무 다발 남짓 주문했다. 색감대로 짜려면 실이 그렇게 있어야 한다고 했다.
퀼트 가방을 만들 때도 그랬다. 완성품을 보고 덥석. 초보가 하기엔 너무 디테일한 구석이 많아 처음부터 된통 고생했었다. 실을 받고 보니 여러 색의 실로 가닥이 이어진 실이네. 학교 다닐 때 잠깐 떠보고 오랜만에 하는 거라 손에 익지 않아 친구한테 도안 보는 법을 배워가면서 모티브 세 개를 떴다. 그런데 자꾸만 실이 한 가닥씩 코바늘에 걸린다. 풀었다 뜨기를 몇 차례 하려니 감질나고 진도도 안나 느리다. 가방에 넣어 멀리 밀어 놓고 퇴근하면 굴비 바라보듯 했다.
모티브 어떻게 돼가냐고 친구가 물었다. 아직.이라고 했다. 시크한 친구가 "요원하군!" ㅋ 며칠 후 구원투수처럼 친구가 다시 등장해서는 너 아직도야? 응. 퇴근하면 피곤하기도 하고, 계속 뜨지 않으니까 뜨는 차례를 자꾸 잊어먹어. 야, 그거 갖고 와. 내가 뜨게! 한다. 실을 두고도 드럽게 뭉그적거리네. 나 그런 꼴 못 봐. 오~ 이런!!!! 실을 받아 본 친구가 하는 말, 실이 좀 많네? 이미 겜 오버야, 너. 딱 걸렸어~~
그러곤 점심 맛있게 먹고 헤어졌다. 그로부터 일주일, 친구를 만났다. 옜다~ 나 눈 빠지는 줄 알았어. 모티브 넣은 가방을 건네며 온 집 안이 실몽당이야. 정신없어. 담달에 여행이나 가자, 한다. 좋지, 가자, 여행. 뜨개 할 때 잡생각 안 나 좋다는 친구다. 잡생각 들 길 없는 습관성 집중에 빠지는 거겠지…. 친구 남편은 아무 생산성 없는 일에 시간 쓰고 진 뺀다고 싫어한다는데.
친구가 떠준 모티브를 잇고 있다. 여섯 귀퉁이를 맞춰가며, 색깔도 이러저러 맞춰가며. 아무리 생각 없다 해도 생각이란 슬금슬금 그림자처럼, 연기처럼 두서도 없이 오가기 마련이다. 징검돌 건너듯 한 발 한 발 통통거리다가도 느닷없이 내를 건너기도 하는 게 생각이다. 삼십년지기 친구는 무슨 생각을 하며 뜨개질을 했을까.
'어제'라는, 시도 때도 없이 떠오는 후회와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오늘' 사이에서 얼마만큼의 파장으로 널을 뛰었을까. 어깨가 아프다. 눈도 흐려지고. 다음부턴 결과만 보고 무모하게 덤비지 않겠다. 남이 하면 좋아 보이는 일은 실은 오랜 노력의 산물들이므로. 과정을 거쳐보지 않은 자가 함부로 내는 어설픈 욕심과 부러움은 이만큼 나이를 먹었으면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다. 내가 가진 것, 할 수 있는 것 안에서 양념 치지 않은 심심함 하나만큼만 오지게 가슴에 심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