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톱 상상
부모님 발톱을 보고 있자니 나이는 곳곳에서 온다는 걸 알게 된다. 돋보기를 콧등에 걸치고 눈과 발 사이의 거리를 가늠해 등을 굽히고 발을 당겨 발톱깎이를 갖다 댄다. 발톱깎이가 소용없게 발톱이 두꺼워졌다. 젊었을 땐 안 그랬다. 보기 싫지 않게 잘 다듬어 온 발톱이다. 내 부모님만 그런가도 생각했지만, 나이 많으셨던 시어머니도 그랬다. 나도 한때는 예뻤던 발톱이었다고 입모아 얘기하던 어머니들.
나는 일명 조개손톱을 가졌다. 결혼해 아이를 낳고선 손톱 먼저 보았다. 나 안 닮아 다행인 아이 손톱, 발톱을 정성스럽게 다듬었다. 양쪽 모서리가 생기지 않게 둥글게, 예쁘게, 긁힐 염려 없이, 찌르거나 걸리지도 않게. 손으로 얼굴을 비비다 저도 모르게 제 손톱에 얼굴을 긁혀 우는 걸 보고 난 후엔 더욱 조심해 깎았다. 손 싸개도 해 보았지만 보는 내가 더 답답해 잘 씌우진 않았기에.
그런데 그 둥근 모서리 때문에 일이 생긴다. 부모님 발톱은 두꺼워지며 휜다. 더 깊이 살을 파고든다. 아이는 성인이 되니 길쭉한 타원형 손톱으로 자랐다.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다. 더욱이 엄지발톱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리라 더욱 다짐이라도 하듯 둥글수록 더 둥글고자 웅크리기 시작했다. 발톱 양 끝이 살을 파고들어 아파 참을 수 없던 아이는 고무줄 머리끈도 대어봤다, 거즈를 끼워봤다 해보지만 이미 휘기 시작한 성질은 여간해선 굽힐 줄을 모른다. 고름이 차기 시작한 발끝을 보고서야 아차, 했다.
이리될 줄 몰랐다는 부모님이 내게 당부를 한다. 모서리를 둥글게 깎지 마라. 날카롭더라도 살 끝까지 발톱 올라오도록 그냥 두어라. 내 어릴 때 바짝 깎인 손발톱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른다. 끝이 발갛게 물들어 닿을 때마다 아프고 쓰라렸다. 당신 손발톱이 쓸리거나 걸리는 걸 두고 보지 못하는 깔끔한 성격이라 자식의 그것이라고 그대로 두고 보았을 리 없다. 그런 엄마가 내 발톱을 걱정한다. 내가 딸의 발톱을 걱정하듯이.
스스로 손발톱을 깎게 되었을 때 나는 해방을 맞았다. 내 맘대로 길게 길렀고, 둥글게 다듬었다. 바짝 깍지 않아야지, 예쁘게 둥글려야지, 조개손톱이지만 그렇게 하고 매니큐어를 바르면 얼마나 이쁠까, 하고 설렜다. 그리하여 나는 조개손톱의 로망인 ‘길고 둥근 손톱을 향하여!’ 외치며 손톱을 다듬었다. 발톱도 마찬가지. 그래서 아이를 키우면서는 내 손톱을 닮지 말고 길고 둥글었으면 했다.
노안으로 다초점렌즈를 끼는 처지에 지금은 그런 화려한 부활을 꿈꾸지 않는다. 오히려 부모님 당부말 귀에 담으며 새로운 모양을 하게 될 발톱을 상상한다. 모나지 않게 둥글리면서 사는 게 좋은 거라고 뾰족해지려는 순간이 올 때마다 다독이며 살았다. 그게 언젠가 내 속으로 파고들 때 있을 거란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않았다. 인생 굽이길에서 둥글기를 그만둔, 일자 끝으로 양쪽 발가락을 참견할 발톱이 궁금해진다. 미래를 위해 지금껏 만들어 온 부드러움을 그만두고, 자라는 대로 그냥 두고 볼 날이 가까워서 마음 반대편은 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