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에 꺽인 가지에도 결실의 계절은 오기 마련
길을 걷다 보면 코인노래방이 많다. 대학 막바지에선가 노래방이란 게 처음 생겼을 때 얼마나 희한했는지 모른다. 탁구나 볼링, 당구가 우리들의 주요 스포츠였던 때 어두운 조명이 있는 곳에서 목 터져라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건 묘한 자극이었다. 이십 대의 호기심은 채워도 채워도 목마른 갈증 같아서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는 소식이 들리면 어떻게든 약속을 잡아보는 것이다. 음악을 틀어주는 DJ가 있다는 떡볶이집에 우르르 몰려가 곡을 쓴 쪽지를 내밀고 두근두근 기다린다. 신청한 '내 음악'을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들을 수 있어서 설렜다. 나를 선뵈는 느낌이랄까. 새로운 공간에 입혀지는 음악이란 감성이 그땐 왜 그리 끌렸을까. 음악을 들으며 턱을 괴고, 발을 까닥여보는 건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는 긍정의 신호 같았다. 롤러스케이트장에서도, 볼링장에서도, 탁구장에서도 부지런히 손발 스텝 맞춰 땀을 흘렸지만, 어지간한 노력이 아니고선 폼을 내지 못했다. 그래서 떨어지는 낙엽이나 갑자기 날리는 눈발의 계절에 음악이 흐르는 어둑한 공간, 어지간한 조명 아래서 노래를 부르는 맛이 내 세계에선 단연 으뜸이었다.
‘야자’로 대변되는 수험생 시절 어둑한 새벽에 도시락 두 개를 싸고, 영어사전, 국어사전, 때로 옥편까지 넣어 가방인지 짐인지 모를 무게를 등에다 지고 만원 버스를 탄다. 묵직한 가방과 도시락이 인파에 막혀 내릴 정류장에서 내리지 못한 적도 있다. 그렇게 고3을 보내던 막바지, 숨소리조차 조용하던 어느 밤. 열 시로 기억한다. 오락부장이 교탁 앞으로 나오더니 “얘들아, 오늘이 10월 마지막 날이야. 우리 잠깐 불 끄고 이용의 잊혀진 계절 부르는 거 어때?” 뜬금없는 제안에 어리둥절함도 잠시 누군가는 싫기도 했겠지만 우린 순순히 응했다. 그리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을 함께 불렀다. 불을 끄기로 한 건 잘한 일 같았다. 친구의 표정을 볼 수 없으니 내 심정을 한껏 노래에 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래가 못마땅했던 친구였는지 "야 불 켜!" 소리에 서둘러 켠 형광등이 부르르 환해지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멋쩍게 웃던 우리.
코로나로 삼 년 동안 못 만났던 지인을 만나러 가는 지하철 안. 흔들리는 차 안에서 글을 읽지 않은 지는 오래다. 노안이 와서도 그렇지만 멀미가 나서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을 본다. 두 손을 곱게 포개고 눈을 감은 사람의 손 위로 맑은 햇살이 지난다. 부지런히 화장을 고치는 이, 오래도록 기념이 되었을 만한 낡은 반지를 낀 어르신도 보인다. 남의 사정을 빤히 보는 것도 무례라 이어폰을 꺼내 끼고 눈을 감는다. 정훈희, 송창식이 부른 ‘안개’를 듣는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본 후로 생각나면 듣는 노래다. 내가 태어날 때쯤 처음 불렸던 이 노래는 오십여 년도 훌쩍 지나 영화음악으로 도착했다. 음조와 가사가 영화의 분위기에 더해져 더 애잔하다.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로 시작해 '안개 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로 끝나는 노래는 송창식과 함께 부르니 나직한 스토리가 된다. 마치 내게 읊조리는 말처럼 느껴진다. 안개 낀 도시를 운전하던 해준을 볼 땐 김승옥의 무진霧津을 떠올렸다. 어느핸가, 일몰 시간을 놓친 나는 김승옥 문학관 앞에서 흩어지는 목화를 보며 돌아 나왔더랬다. 굽이굽이 강과 바다가 하늘 아래서 어둑어둑 만나고 있던.
서울의 어느 거리에서고, 나의 청각이 문득 외부로 향하면 무자비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소음에 비틀거릴 때거나, 밤늦게 신당동 집 앞의 포장된 골목을 자동차로 올라갈 때, 나는 물이 가득한 강물이 흐르고 잔디로 덮인 방죽이 시오리 밖의 바닷가까지 뻗어 나가 있고 작은 숲이 있고 다리가 많고 골목이 많고 흙담이 많고 높은 포플러가 에워싼 운동장을 가진 학교들이 있고, 바닷가에서 주워온 까만 자갈이 깔린 뜰을 가진 사무소들이 있고 대로 만든 와상臥床이 밤거리에 나앉아 있는 시골을 생각했고 그것은 무진이었다.
『 무진기행』· 김승옥 · 문학동네
내년이면 세상 빛을 본 지 환갑이 되는 작품 무진기행. 작가에게 무진은 고향과 같은 공간이었다. 어지러운 소음과 복잡한 서울길에서 떠올렸던 그만의 공간 무진의 정서는 눈감으면 잡힐 듯하다.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도 이 감각은 유효하다. 마음 둘 곳이 어디 기억 속 공간뿐일까만, 멈춰버린 시간을 보는 것처럼 작가의 오래된 공간과 교감했었다. 더하여 순천만에서 본 노랗게 고개 숙이던 가을 나락과 보라색 칠면초 군락이 갯벌 속에 훌훌 서 있던 모습은 세상 아름다운 色지경이었다. 영화처럼 밀려드는 파도는 없어도 생명의 품은 느릿느릿 깊었다. 가야금, 해금, 대금이 함께 짓는 음악 같은 물길의 시공을 보았다. 비어있으면서도 꽉 찬 것 같은 공간은 나직나직했다. 천 년을 흘렀을 부드러운 곡선에 어린 마음을 부리고 품에 안겨도 괜찮을 것 같았다.
오르막과 내리막, 평탄과 거친 시끄러움 사이를 넘나드는 음악이 세상을 떠돌다 잠시 내려앉아 지하철 속 나를 어루만진다. 높고 낮은음처럼 어제의 일이, 지나간 사람의 생각이 흘러가고 온다. 영화를 보며, 내가 하는 말과 상대가 듣는 말, 내가 하는 사랑과 상대가 받는 사랑, 둘 사이에 나누는 말과 몸짓이 서로 닿지 않던 수많은 날들이 떠올랐다. 마음에서 먼 풍경이 되기까지 꽤나 많은 밤을 보냈다. 바람과 파도가 멀어질 때까지 기다렸던 날들이 있다. 너울 치는 파도에 맞서는 건 무모한 용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는 그런 용기를 보여줬다. 태풍 끝 여름 가장자리는 가을 앞에 선 시간이란 걸 알잖아. 폭풍에 꺾인 가지에도 결실의 계절은 오기 마련인 그들의 시공을 한 번 믿어봐. 그 치유의 품을 한 번.
해준이 애타게 부르던 사람이 실은 가장 가까운 자신일지 모른다, 발아래 두고도 모르는 것이 어쩌면 ‘나의 진심’ 일지 모른다. 이를 외면하지 않고 직면할 수 있는 공간이 가까운 곳곳에 있으면 좋겠다. 지하철 3호선 수서행 안국역 7-1칸은 ‘안개’와 함께 덜컹거린 오늘, 나의 시공이었다. 해준이 밀리는 파도 속에서 신발끈을 다시 맨다. 흘러가는 물과 해의 시간에 장사 없으니 가끔씩은 이렇게 때때로 네 발 밑을 보라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