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의 시절이 지고 있어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매미가 벗어놓은 옷, 텅 빈 공간 속에서 수많은 감정들을 보았습니다. 그 흔적을 같이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림책『피어나다』장현정 작가의 말 중.
십칠 년 일한 매미가 은퇴한다. 파티는 없다. 악수도 없다. 상사는 책상을 치우라고 말한다. 톡 톡 톡!
이제 안녕을 고할 때다. 톡 톡 톡!
그림책 『매미』숀탠 · 풀빛
8월도 보름이 지나면 바닷물도 차가워서 해수욕하려면 춥다, 자라면서 들은 얘기다. 8월 중순이면 아직도 한참 더울 때라 정말 그럴까 하지만 해수욕장 폐장은 아마 그즈음이지 않을까 싶다. 바다는 이렇게 가을을 준비하는데 매미 소리는 아직도 우렁하다. 밤조차 귀뚜라미와 함께다. 여름과 가을의 어느 교차점에서 누구는 가을을 부르고, 누구는 가는 여름이 못내 아쉽다. 수컷이 암컷에게 사랑을 구하느라 내는 소리가 맴. 이라는데 이들 畢生의 노력을 하필 '운다'라고 하다니. 소리를 못 내는 암컷에게 수컷이 당신을 찾아 목놓아 울고 있다, 고 하면 얼마나 끌릴까. 끌리긴 할까. 소리가 있건 없건 통칭해 우린 이들을 "매미"라고 부른다. 뿐 아니라 개구리도, 소도, 뻐꾸기나 기러기나 새들도 소리를 내지만 역시 이들의 소리에게도 '운다'라고 한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로 시작하는 노래도 어렸을 땐 많이 불렀다. 그래선지 동물이나 곤충이 운다는 소리가 딱히 거슬리진 않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소리가 울어 당연하다는 뜻은 아니다.
맴맴 울어 맴(매암)이,라고 마음을 담아 노래했던 누군가 쓰기 시작한 말일테다. 소리와 의미의 관계가 사회적으로 약속된 후에는 개인이 맘대로 바꿀 수 없다는 게 우리 모두의 약속인데 출근하다 들은 매미소리가 오늘따라 괜히 의심스럽다. 조용하던 공원길에 한 마리가 소리를 내기 시작하니 초록의 틈마다 쟁쟁하다. 서로 질세라 더욱 소리를 높인다. 소리에 굴곡이 있지도 않다. 그냥 쭉 한 소리로 이어지다 뚝 끊긴다. 그중 몇 마리가 '나 다른 종'이라는 듯 굴곡 있는 화음을 넣는다. 소리가 클수록 암컷에게 인기가 많다고 하니 더욱 자기를 알리려고 변주하는 소린지, 타고난 발성인지. 그 높은 소리로 짝을 만나 오래도록 개체를 이어가려면 땅속 인내의 시간을 어떻게든 보상받아야 하지 않을까. 너무 애쓴다.
왜애애...ㅁ.. 왬왬왜....로 들렸다. 매미라고 부른 사람의 심정이 오늘 내가 들은 심정과 같았다면 매미가 아니라"왜미"가 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 우냐고 묻듯이, 왜 그러느냐고 묻듯이. 매미는 적어도 삼 년에서 사는 곳에 따라 길게는 십칠 년간 땅 속에서 기다리다 때가 오면 땅 위를 밟는 행군을 한다. 자기가 있을 곳을 찾아 나무 위를 오르고 변태의 고난도 기꺼이 감수한다. 십칠 년을 땅 속에서 숨죽여 일한 매미가 어둠을 은퇴하는 것은 비상을 위한 준비다. 그러기까지 아프면 안 되고, 멈춰서도 안된다. 잘했다는 칭찬이 없어도 땅 위를 꿈꾸는 것은 그들의 본능이다. 평생 일한 책상을 치울 때 다른 세상을 향한 새로운 시작이 남아 있음을 그들은 아는 것이다. 땅 속의 삶과 고치 속의 삶에게 안녕을 고하는 순간이 매미에겐 숲을 향해 젖은 날개를 펼치는 변신의 기로다 (숀탠). 그런가 하면 매미가 소리를 내기 전엔 그들의 존재가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자세히 보니 그들의 벗은 옷에서 수많은 감정을 읽었다는 작가도 있다. 그 흔적을 나누고 싶어 "피어나"는 그들의 일생을 그리며 작가 역시 피어나 보려 한다고 썼다 (장현정).
한 시절이 끝나고 다른 시절을 맞을 때 이제 끝이라는 생각을 하면 어떨 땐 후련하고, 때론 아쉽기도, 가끔 무감하기도 하다. 여름이 가려한다. 9월을 앞둔 이맘때쯤, 아직 여름인데 여름 안에서 조금씩 바람이 달라지는 조짐이 느껴지면 괜스레 뒤를 돌아보게 된다. 한창 여름 뙤약볕에 올해 농사 어땠더라, 슬쩍 곁눈을 떠보는 것이다. 내게 계절이 지났다면 지금은 어느 계절쯤일까. 열매 욕심에 설익은 십칠 년의 끝을 보는 중일까, 변신의 기로를 헤매는 중일까. 아직 고치 속일까…. 가을이 오려는 때 한 철 곤충의 소리가 내 방향을 묻고 있다. 매미보다 큰 울음통을 가지고도 울지 못하는 누군가의 마음을 실은 말, 운다. 한 낱말도 높낮이나 셈여림에 따라 다른 뜻으로 들리기도 하는 법이니 시끄러우면 반가운가 보다, 조용하면 좀 쉬나 보다고 생각하련다. 남들이 뭐라 하건, 어떤 뜻을 붙이건, 뜻이 무시로 바뀌건 상관없이 자기 길을 오로지 걷는 매미의 시절이 지고 있다. 고생이 많았어요, 더운 여름에 짝을 부르느라. 어떻게, 맘에 드는 이는 만나셨을까요?
영조 때 이경신은 매미의 고어인 '매암'과 '쓰르람'의 소리를 듣고 이런 시를 썼다.
매암이 맵다 울고 쓰르람이 쓰다 우니, 산채를 맵다는가 박주를 쓰다는가. 우리는 초야에 뭇쳐시니 맵고 쓴 줄 몰라라.
송현섭 시인은 또 이렇게 썼다.
새가 운다,라고 쓰면 / 우습지 않니? / 부스스, 아침에 일어난 새가 / 달처럼 동그란 둥지에서 / 잠들 때까지 운다면 / 끔찍하지 않니?
새가 노래한다,라고 써도 / 우습긴 마찬가지야. / 배가 고파도 노래하고 / 독수리가 쫓아와도 노래한다면 / 미친 새가 분명하거든.
나는
동시의 첫 문장을 이렇게 쓸 거야.
"짹짹!"
새가 말하네.
『피어나다』· 장현정
『매미』· 숀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