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랑무 Aug 25. 2023

믿음을 서리당한 분들께

도둑과 주인


프랑스 알프스 언덕 어디쯤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살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수박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습니다. 안톤 체호프가 그의 형제에게 '너는 네 삶이 도둑맞은 수박인 것처럼 행동해야 해.'라는 말을 했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코린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안톤이었답니다.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 · 코린 로브라 비탈리 글  · 마리옹 뒤발 그림  · 그림책공작소



여름 땡볕 아래 땀 흘리며 걷다 보았다.  좁은 땅 위에서 번져가는 포도와 수박.  어렸을 땐 눈앞에 먹을거리가 보이면 겁 없이 따 맛을 보았지.  주인이 있어도 궁금한 내 맘이 우선이었다. 귤밭이던, 수박밭이던, 파밭이던 가리지 않았다. 떨어져 댕굴 거리던 열매를 줍다가 친구랑 호승심 발동하면 에라, 모르겠다 손에 잡히는 대로 따 먹었다. 중학 다닐 때 학교 근처 귤밭에서 귤서리하다 주인에게 들키는 바람에 교무실에 불려 들어간 적 있었고, (중2까지 교복을 입어서 쉽게 잡혔다) 고모랑 할머니 집 근처 어느 밭에서 수박서리를 하다  더운 날 너무 익은 수박에선 막걸리 같은 부연 물이 시큼 거리며 쏟아진다는 것도 알았다. 빨간 살이 그만 지쳐버린 수박에선 거짓말 조금 보태 물 좀 섞은 막걸리가 좌르르 토하듯 쏟아졌다. 집 근처 파밭에서 파를 뜯어 소꿉장난하며 파맛을 본 이후로 맨입에 파가 얼마나 매운 지 알게 됐으며, 남의 집 담벼락에 핀 해바라기 씨앗을 넘봐 맛을 본 후론 어느 정도가 되어야 씨가 익은 건지 알게 되었다. 훔쳐먹은 음식으로 내 삶의 주인행세를 했다. 넓디넓고 높디높은 곳을 보고 있으면 나 하나쯤이야 하는 호연지기가 생겼다. 그런 곳은 모름지기 가까이 가서 보지 않는 한 멀리서 보면 푸름만이 넘실대는 정연한 질서처럼 보였다. 도덕심 모르겠고 오감만족의 본능이 앞서던 시절이었으니까.      

          

덩굴 올리며 손을 본 주인의 손맵시 단정하다. 도시에선 푸른 밭은 아니어도 정성스러운 손끝을 가진 사람이 있는 곳을 지날 때면 가끔 선물 같은 이런 눈호사도 한다. 한여름 땡볕아래  왕성한 푸름을 가꾼 주인의 손끝이 얼마나 바빴을까. 작물을 키우던 키우지 않던 씨를 심고, 수확을 하는 마음을 얻어본 사람이면 하루의 땡볕에, 지나가는 소나기에, 한 줄 바람이라도 불어가야 살집 두둑해진다는 순리의 기쁨을 절로 믿게 된다. 집 앞 화단에서나마 고추, 배추, 호박을 심어보니 열매 하나하나가 기뻤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들의 안부를 먼저 살폈다. 대접만 한 호박꽃이 절로 지기만 해도 지나는 개미를 의심했다. 열매의 결실을 맺기도 전에 억하심정으로 싹독싹독 꽃 자른 이 누구인가, 눈을 굴렸다. 나중에야 절로 떨어진 꽃은 수꽃이라는 걸 알기까지 내 의심은 끝이 없었다. 무지의 發露였다. 제 어린 시절은 남의 믿음을 서리했으면서 지금은 얄팍한 대가를 얻고자 무고한 이를 의심한다. 이제야 도둑맞은 수박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기에 내 어린 손에 믿음을 서리당한 분들께 늦게나마 죄송한 마음 전한다. 어쩌다 눈에 띄어 내 작은 손에 스러져간 수박에게도, 호박씨에게도, 난도질당한 파는 말할 것 없고.


도둑과 주인, 또는 그 사이 몇 개의 모습이 모두 나일 것이다. 지나온 나는 온전히 나였을까. 어른이 된 지금 그때가 모두 온전한 나였겠지? 싶은 건 그때로부터 난 더 자랐고, 좀 더 세상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뭔가 좀 안다는 어른이 할 일들은 많아서 하루를 채우고서도 하루가 온전히 나이거나 내 것이었느냐면 꼭 그렇지도 않기 때문이다. 정지된 것 같은 마법의 시간을 느낄 마음의 빈 틈이 없다고만 둘러댈 뿐이다. 웃기는 얘기지만 수박씨를 마당에 퉤- 하고 마구 뱉고 거기서 싹이 나오는 걸 코 박고 보던 여름날의 일상이, 과자부스러기를 일부러 흘려놓고 개미들이 입을 맞추며 오가는 일상을 보는 것이 온 하루였던 적이 있다. 지루할 틈 없었다. 어른이 되어 내 몫의 일이 많아져서 하나의 일상으로 하루를 채우는 날들은 멀어졌다. 하루의 알맹이는 날마다 새로운 정보물과 말들의 파편으로 채우고, 그렇게 쌓인 알맹이들은 어느새 허공으로 흩어진다. 있기나 했던 걸까, 알맹인. 

   

목까지 차오른 알맹이들의 퇴적물은 지금으로부터 멀어진 순부터 버려지기 시작한다. 버려지는 것 중에는 지금은 필요 없다 여겨지는 파편들도 있는데 나중에 찾게 될지는 미지수다. 어쩌면 버려졌다는 걸 잊을 수도 있다. 버려지는 중에도 끊임없이 무언가로 채워지고 있는 중…… 일 테니까.  가슴 바닥까지 가라앉은 것들은 태풍이나 불어야 떠오를까. 빈 틈을 바라고 정지의 진공을 원하면서도 계속 버리고 채워가는 일상으로 하루를 살고 있다. 새로운 질문,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 여러 가지, 맺어지고 단절되는 관계 속 방향에 따라 이럭저럭 흔들리며 왔다. 복잡한 여러 개의 세상에 발을 담그며 사는 요즘의 삶은, 글쎄 잘 모르겠다. 어디까지가 온전한 나이고, 얼마큼의 질량과 밀도로 채워지고 있는지. 나에 가까운 삶을 얼마나 정직하게 살아왔고, 살아가려는지. 말이 사실이나 진실과 다르다는 것은 숱하게 봐왔고, 사람들의 겉만 봐서는 그의 일부도 보지 못한 것이며,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말과 행동을 두고 왜 그래야 하는지 따지다간 세상을 알려면 아직 너, 한참 먼 거라고 타박 듣기 일쑤였다는 사실만 먼지처럼 떠돈다.  

             

내가 나를 사는 것처럼 누구나 자신을 살고 있는 것이고, 어떤 경우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 사는 삶이다. 세상 일엔 정답이 없다. 그래도 겉만을 채우며 삶을 살고 싶진 않다. 수박씨에선 수박이 자라고, 개미가 부지런히 먹이를 나르는 한여름 뙤약볕이 순진순리한 세상. 그 앞에서 눈을 빛내며 하루를 살고 싶은 나도, 여러 개의 세상에 발을 담그고도 잘 살아지는 나도 다 내 모습이다. 도둑맞은 수박의 빈자리에만 눈이 머무르던 앙통의 모습도, 엉망이 된 수박밭을 보며 도둑맞은 수박의 빈자리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은 앙통의 모습도 모두 나일 것이다. 날 잃었다고 하지 말고, 잃지 않도록 지금을 살며, 된통 진한 표식을 남겨가며 잘 살아보자. 지금 쓰고 있는 일상의 기억들도 진심에 가까운 내 표식이 될 테다. 길 위에서는 한 번씩 오늘 같은 이런 바람이 불더라.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