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때 왜 나한테 묻지 않았어?
"우리 인생은 적의를 품거나 잘못을 기억하며 살기에는 너무 짧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적의로 무엇을 하는가이다." <하루 쓰기 공부> / 브라이언 로빈슨 / 유유
삼십 대 남성이 자기만 불행하게 사는 것 같다며 지나가는 사람에게 해를 입혔다. 한 사람은 사망하고, 두 사람은 중상으로 입원 중이다. 살인을 예고하는 문구를 게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초등학교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도 아이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들에 대한 기사가 올라온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며 어느 나라보다 교육열이 높았던 나라. 나는 못 먹고, 못 배워도 자식만큼은 잘 먹이고, 잘 가르쳐야 한다고 허리띠를 졸라 묶던 나라다. 누구를 향한 적의인가. 특정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는 나도, 내 가족도 있을 수 있다.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땐가 한 학부모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아이 때문에 본인 아이가 힘들어한다면서. 얘기를 듣고 일단 죄송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고 나서 아이를 불렀다. '어떤 일이 있었느냐'라고 묻는 게 일반적인 상황에 나는 아이에게 '오늘 친구에게 잘못한 일이 없었는지 곰곰 생각해 보라'라고 얘길 했다. 아이들은 자기가 잘못을 저질러도 면피로 상대 친구를 먼저 탓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하지만 난 두 가지 잘못을 했다. 첫째, 어떤 일이 있었느냐고 먼저 묻지 않은 것, 둘째, 경위도 모른 채 아이를 가해자로 지목한 것.
둘은 짝꿍이 되어 일주일간 옆자리 친구였다. 어떤 일인가로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우리 딸이 짝꿍 손을 꼬집었나 보았다. 누가 먼저 시작했든 꼬집은 건 잘못이니까 사과하라고 일러주고 넘어갔다. 그런데 며칠 후 짝꿍 엄마가 전화해서 같은 얘길 한다. 죄송한데요, 우리 아이에게도 주의를 시켰고,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계속 불편하시다면(아이가 힘들어한다면) 선생님께 말씀드려 주세요.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인솔하고 계시고, 그 와중에 일어난 일이니 선생님께서 확인 후에 아이들 훈계를 하실 테니요. 저는 어떤 결과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했다.
아이를 키우면 많은 일들이 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돌을 맞기도 하고, 비비탄 총알을 맞기도 했으며, 미끄럼틀에서 누군가 밀쳐서 어린 나이에 뼈가 금이 가기도 했다. 어린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할 욕을 듣고도 그게 뭔지 모르고 넘어가기도 했다. (나중에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위층 현정이가 얘기해서 알게 되었지만 어쨌든) 주로 이유 없이 당하는 쪽이었지 가해자로 누군가에게 지목되기는 이제껏 살면서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누군가 아이가 잘못이라고 얘길 하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친구가 뭐라고 했기에 네가 그런 일을 했니, 묻는 쪽이 아니라 자초지종이야 어떻든지 간에 네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 였다. 기승전을 묻지 않은 채 타인이 내린 결과를 의심 없이 받아 들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고, 나는 중년이 되었다. 살면서 일어나는 일들 중에는 시시비비를 가려야 되는 일이 있고, 알면서도 모른 척 넘어가야 되는 일들도 있다. 잘못된 일이 잘못된 줄 모른 채 상황에 따라 흘러가기도 하고, 힘이 있는 사람들의 주장에 끌리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은데도 보이는 것들이 중요한 세상을 살다 보니 본의 아니게 남과 비교하는 삶에 빠지기도 한다. 때를 놓치고 후회하는 일들도 있고, 너무 앞서가서 일을 망치는 경우도 본다. 그런 상황을 다 겪어보고도 깨달음보다는 후회가 많이 남지만, 가장 뼈아픈 것은 성인이 된 아이들이 내게 이런 말을 할 때였다.
"엄마, 그때 왜 나한테 묻지 않았어? 난 정말 잘못한 게 없는데. 왜 그렇게 된 거냐고 먼저 물어봤어야 됐어. 설사 내가 잘못을 했더라도 일단 내 편이 돼줬어야지."
편이 되어주지 못한 길을 걸었다. 지금도 상처를 많이 받고 사는 쪽에 기운 내 아이들이다. 남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느니 삼키고 나서 아픈 아이들. 그게 다 엄마인, 나로부터 온 거 같아서 가슴이 아프다. 나는 나의 엄마에게서 온 아픔이 아픔인 줄 모르고 자랐다. 아픈 건 줄 알면서 직시해 해결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부터 꿀꺽 삼키고 외면하는 삶을 산 결과다. 지금이라도 아이들에게 잘 물어야 한다.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하며 편이 되어 보듬고 쓰다듬어야지. 묻고 돌아보기에 늦은 때란 없는 거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