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제 허락도 없이 그걸 치우셨잖아요!!!
어수선한 것들과 편안하게 하나가 되어 사는 딸에게 물었다. 저것들 그대로 두고 몸만 쏘옥 빠져나갔다 들어오면 기분이 어떠냐고. 아아아무 생각이 없는데요? 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저기서 더 어지르는 건 감당이 안 될듯해 한쪽으로 몰아둬 봤다. 그랬더니 자기가 어디 어디쯤에 뒀던 무엇이 어딨냐고 난리다. 그러면서 왜 허락도 없이 남의 물건을 만지냐고 골을 낸다. 세상에. 너와 나를 남이라 생각해 본 적 없는 엄마는 어이가 없다. 자기가 아닌 사람이니 ‘남’이라고 얘기한 뜻은 알겠다. 허락도 없이 만진 것은 실례했지만 오죽하면 그랬을까 헤아리지 않는다. 듣는 ‘남’은 그저 섭섭할 뿐이다. 그와 나는 엄마와 딸의 질서라지만, 어느새 그의 질서는 내 그것과 무척 달라져있다.
나갔다 들어와도 집 상태를 정리할 사람은 나뿐일 거란 걸 알기에 나가기 전에 되도록 얼추 치워놓고 나가느라 아침이 바쁜 나와는 영 딴판이다. 아침 정해진 시간 안에 해놓고 나가야 할 일이란 게 뻔하다. 먹었던 그릇 설거지부터 입었던 옷과 이부자리 정리, 쓰레기 치우는 일상과 일은 압축된 시간 속에 뒤섞인다. 마음이 바쁘고 발걸음이 빨라지며 시간에 쫓긴다. 늦었다 생각하는 순간 화장도구는 가방에 던져지고 있다.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저녁준비로 아침과 비슷하게 돌아가는 도돌이표다.
그런가 하면 딸의 아침은 나와 사뭇 다르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저러다 늦지 싶을 때까지 씻고 나와 음악을 들으며 머리를 말리고 단장을 한다. 새 모이만큼 뭔가 하나를 먹거나 들고나가며 “엄마 빠이!”한다. 그가 나간 자리는 흡사 폭탄 맞은 지하벙커다. 보고 있자니 한심하고, 치워 놓자니 끝이 없겠다 싶어 문을 닫는다. 안 보면 그만이지, 하다 그래도 너무한다 싶은 날, 말을 해도 귓구멍에 못을 박았나 싶었던 날, 물건들을 한 귀퉁이로 몰아뒀다. 그랬더니 난리다. 자기가 알아서 잘 뒀던 거란다. 무질서 안에서도 나름 질서는 있다면서. 그거 중요한 건데... 그렇게 중요한 거면 잘 뒀어야지!, 잘 둔 거라니깐요 어머니!! 그런데 어머니가 제 허락도 없이 그걸 치우셨잖아요!!!
오 마이... 딸과 나의 질서는 모르는 사이 이렇게 달라져 있었다. 나를 보고 배울까 봐 하늘에 맹세코 한 점 부끄럼 없이 집안을 정리하고 다녔다고 자부하는 바다.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자. 사람마다의 질서는 그를 따라 도는 우주관에 따라 다를 거라고. 너무 거창한가. 그런데 있다고 믿는다, 사람의 우주는. 오래전 누구는 화성에서 왔고, 누구는 금성에서 왔으므로 본질적으로 다른 개체라지 않았나. 나의 틀에 딸을 가두는 우를 범하지 말자. 새로운 게 부담스럽고,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나와는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딸의 질서는 분명 다르겠지. 그가 보기에 나의 질서는 무미건조한 무채색 같아서 자기는 '맹세코'나와 다른 길을 가겠다 작정했을지 몰라, 그래서 그런 걸 거야 생각하니 한결 편해졌다. 그의 다이나믹한 유채색의 세계가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누구에게나 잘 듣는 안전한 만병통치약 같은 건 없다. 때때 변화하는 공간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진화하자면 건너야 하는 일곱 빛깔 무지개 처방전을 받은거야. 엄마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고 맹세한 나조차 어떨 때 '내 안에 엄마가 같이 살고 있는 거 아냐?' 싶을 때가 있어 화들짝 놀랄 때가 있다. 글을 쓰는 동안 딸은 그러지 말기를 어느새 바라고 있는 엄마다. 그래서 그의 어수선함을 지지하진 못해도 최대한 눈을 감아줄 수는 있다.
딸이 초등 4학년 때 그린 삐삐의 그림을 어여삐 보고 있는 아침이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
『내 이름은 삐삐롱스타킹』/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 시공주니어 / 2017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 오픈하우스 / 2008
같이 읽으면 좋은 그림책 :
『고함쟁이 엄마』/ 유타 바우어 / 비룡소 / 2005
『돼지책』/ 앤서니 브라운 / 웅진주니어 / 2001
같이 들으면 좋은 노래 :
엄마가 딸에게 / 양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