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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랑무 Jan 04. 2024

웅크린 나 인정.

어둔 아침에게 하는 인사

넌 너무 말을 아껴. 지인이 몇 년 전 내게 했던 말이다. 나 자신을 지켜야 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서조차도 침을 삼킨다. 가슴이 두 방망이질을 친다. 할 말이 없는 게 아닌데, 생각은 누구보다 많은데 내뱉지 못한 적이 많다. 다른 사람이 혹시 내 얘기를 듣고 마음 상할까 봐, 혹은 중요하지 않은 말을 한다고 코웃음을 칠까 봐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그랬던 것 같다. 내 이런 성향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더듬고 더듬는다. 당장의 내 기분보다 남의 기분을 먼저 생각하게 된 것은. 내 맘 상하는 것은 둘째치고 남의 맘이 상하는 것이 더 신경 쓰이게 된 것은. 쓰고 지웠다를 반복하며 마침표가 나은지, 어색하나마 이모티콘을 넣을지 쓸데없는 긴장을 하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난 아직 알지 못한다. 그냥 습관 같은 신경쓰임이다. 

 

타지로 일하러 나가 남편이 없는 십 년 동안 엄마는 삼 남매를 데리고 어렵게 생활을 이어갔다. 여덟 살 나와 여섯 살, 다섯 살 남동생 둘. 종일 일에 치여 돌아온 엄마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자식들 밥을 먹이는 일이었을 거다. 늦도록 배가 고파 남의 집 노란 불빛을 보며 엄마를 기다렸던 기억이 아직도 있다. 집에 오면 어린 자식들이 멋모르게 어질러놓은 걸 치워야 했을 거고, 서둘러 밥을 안쳤겠지. 방을 훔치는 엄마를 모르는 동생들은 종일 기다린 엄마에게 치대었을 거고. 초등 삼 학년이었나 사 학년인가..  나는 밥을 하기 시작했다. 뭔가 화가 난 엄마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거 같다. 놀다가도 엄마가 올 시간이 가까워지면 방을 치웠다. 내일을 걱정하며 잠을 청했을 그때의 엄마가 어린 눈에도 힘들어 보였으니 스스로 일을 찾았던 거다.


오래전 일이라 그때의 마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짐작할 뿐이다. 도움이 되고 싶었던 건 인정이 필요해서기도 했을 거다. ‘너의 수고로 엄마가 편해졌다, 라든가 고마운데 넌 아직 어리니 안 해도 된다, 라든가 동생들 돌보느라 힘들지'라는 얼마간의 인정. 일 마치고 돌아온 엄마의 하루 안부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던 때부터일까,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쓰인 게. 몇 년 전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 그때는 뭘 몰랐지만, 애 낳고 키우다 보니 왜 그랬는지 이제 조금 알 것도 같지만, 그때 왜 그런 거야? 엄마는 말한다. 그땐 살기가 힘들어서 그랬지. 뭐 하고, 뭐 하고, 뭐 하느라. 지금이라도 엄마를 이해해 주니 고맙다. 내가 원한 답은 그게 아니었는데. 너도 고생했지?라는 작고 소박한 도닥임이었는데, 그러고보니 미안했다는 늦은 인사였는데.

 

그냥 엄마를 이해하기로 했다. 매일 작아지는 팔순의 엄마에게 ‘이제 와서’ 무슨 인사. 건강하시기만 하면 돼. 대신 나는 엄마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면 되지. 어느 날 딸이 울면서 들어왔다. 왜, 무슨 일이야? 자초지종을 얼기설기 설명하는 딸.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너는? 넌 뭐 잘못한 거 없고? 잘 생각해 봐, 네가 뭘 잘못한 건 없는지. 무의식이 이렇게 무서운 건 줄 말을 뱉으면서도 몰랐다. 먼저 남을 배려하고 나를 돌아보라는 이성으로 가르치는 게 맞다고 도장까지 찍을 태세였다. 내 바람은 우선 잠재우고 다른 이의 생각부터 짐작해 보라는 말은 아이들이 다 크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았던 말인데 나중에야 알았다. 딸이 상처받았던 마음을.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그땐 자기편이 필요했던 순간이었다는 걸 나중에 나중에 딸이 얘길 해서야 알게 됐다.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늦은 인사를 했다. 그런 뒤늦은 인사가 한 번으로 끝난 건 결코 아니다. “이제 와서...”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나는 딸을 앞에 두고 지난 일을 바라보며 나도 울 엄마처럼 딸의 이해를 바라고 있던 모진 나를 보았다. 내 그림자를 나도 모르게 딸에게 드리웠다. 가장 소중한 사람이 힘든 걸 보는 것만큼 아픈 일이 있을까.

 

엄마를 보면서 자랐다. 난 엄마와 다를 거라는 막된 자신감으로 부모님이 걱정하는 결혼을 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보다 엄마처럼만 안 하면 된다는 겁 없는 희망을 품었다. 엄마가 걸은 길은 내가 걸으면 새 길이다. 그래서였다. 엄마의 길을 끊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 나의 오만은 삶이 힘들 때마다 고개를 들고 다가왔다. 새 길이 새 길일 수 있는 건  웅크린 나를 인정하며 털고 일어서 걸을 때 온다. 나의 그림자를 다시 바라본다. 잘못은 인정해야겠다. 끊어낼 수 없었던 질곡이 여태 살아 나와 함께 하고 있음을. 하지만 다짐한다. 나보다 먼저 살폈던 남의 마음에 앞서 나를 살피기로. 그동안 못했던 말이 있다면 두루두루 하며 살기로. 말하지 않으면 오래 묵어 썩을지 모르고 타이밍을 놓쳐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니. 살아왔던 날들, 살아갈 날들에 대한 안부를 내게 물으며 살자. 잘 살아왔다는 인정, 잘하고 있다는 응원을 하며 아직 어둔 아침에다 인사를 한다. 잘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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