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를 녹이는 따뜻한 마법
매일 그 자리에 있는 사람, 매일 그 자리를 지키는 나무는 매일이라서 그림 같은 존재들이다. 풍경이라 생각하며 스쳐 지난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그다음 해, 그러니까 20년 겨울 이맘때인가 보다. 코로나 확진자가 많아졌다. 그럴수록 서로 거리를 두라고 했다. 손을 잡을 수 없고, 밥 한 번 먹기도 꺼렸다. 마스크 속은 어찌 되었든 눈빛만으로 주변을 탐색하던 때 내가 일하는 곳에선 ‘기간의 정함이 없이 폐관’을 결정했다. 이후로도 여러 번 길고 짧게 문을 닫았다. 그렇다고 일손을 놓은 건 아니다. 내부에서의 일들은 여전히 진행되었다. 안으로 사람을 들이지 못했을 뿐.
일터 앞엔 출근할 때마다 눈인사를 하던 ‘야쿠르트 아줌마’가 있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그분을 다들 그렇게 불렀으니 나도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 그분 주변은 늘 왁자했다. 약간 충청도 억양이 섞인 듯한 그분의 입담은 구수해서 근처 사는 할머니부터 아기엄마, 콩꼬투리 까는 아줌마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그 곁을 서성였다. 껄껄 웃는 할머니 소리가 들리면 무슨 재밌는 얘기를 하나보다 했고,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느리고 낮은 억양이 들리면 아줌마가 맛깔난 추임새를 넣나 보다 했다. 한 번씩은 경찰들이 다녀가기도 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선 으레 목청이 높아지는 일도 다반사니 시끄럽다 생각한 누군가 민원을 넣기도 했을 거다. 맞은편 낮은 건물에서 일하던 나는 의도하지 않아도 그들의 일상을 보게 되고 듣게 된다.
눈이 자주 오시는 요즘 같은 날도 아줌마는 제자리를 지켰다. 그 많은 사람들은 온데간데없다. 요구르트를 지켜야 하는 아줌마는 추위를 한 데서 견뎠다. 점심을 먹으러 나온 어느 날은 야쿠르트 상자 반대편, 그러니까 내가 일하는 건물 한 귀퉁이에서 모자와 두꺼운 옷 무장을 한 채 손을 주머니에 넣고 바람을 피해 웅숭거리고 있다. 아는 체를 하면 불편할까 봐 모른 채 지나친 적도 많고, 눈이 딱 마주치는 어떨 땐 궁금한 이런저런 걸 묻기도 했다. 그런 어느 날 건물 옆에서 어딘가로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점점 억양이 높아지더니 금세 눈물바람이다. 간간이 들리는 말로는 아마 살기 힘들다는 얘기였던 거 같다.
추운 바람에 눈물을 흘려본 사람은 안다. 짠기를 닦는 손이 닿을수록 언 볼이 더욱 아프다는 거. 공원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이 낮은 건물은 야속하게도 그의 심사를 지켜주지 못했다. 귀를 막을 수도 없는 나는 벌거벗은 느티나무 먼 데만 한눈팔았다. 대뜸 나가 들어오시라 할 수도 없었다. 누구에게나 열린 이곳은 감염병으로 문을 닫고 나니 추운 시민을 엿듣는 눈과 귀가 되고 있었다. 공공건물이라 더욱 안으로 사람을 들이지 못했다. 남을 통해 옮을까, 나를 옮길까 주저하며 점점 통로를 닫고 있는 세상의 많은 일들을 본다. 매개체의 행방을 그토록 열심히 물은 건 비단 코로나탓만이었을까.
매일이라서 풍경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잠깐 했다. 실은 나와 관계없이 스쳐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나의 마음이기도 하다. 주변에 눈 돌리기 힘들게 시들어가는 마음 탓인지. 사람들이 품은 수많은 이야기들의 실타래로 짠 담요를 덮으면 내가 겪은 추운 일들이 스르르 녹는 따뜻한 마법이 있으면 좋겠다. 나무도 담요를 덮는 겨울, 누구라서 이 겨울 춥지 않을까. 우여곡절 끝에 풍경이라고 생각했던 것들과 사람에게 문을 열어도 되는 때가 왔다. 아이스박스 안으로 서둘러 손을 넣는 분이 건넨 야쿠르트를 장갑 낀 손으로 받아 들며 인사를 했다. “저.. 내년에는 여기 다른 분이 올 거예요. 건물도 새로 예쁘게 짓는대요.” 코로나 지나간 그때에는 새 건물 안에서 언 몸 녹일 수 있기를 바라며 나누지 못했던 일말의 미안함을 꾹 눌러 접었다. 따뜻한 물 한 잔 건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