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뎌짐의 기술
꽃게에 물이 올랐다. 살아 움직이며 뭍에 오른 꽃게를 무심히 보아 넘기긴 어렵다. 묵직한 것으로 고르며 묻는다.
"맛은 괜찮지요?"
"그럼요, 엊그제 사 가신 분들이 맛있게 잘 먹었다면서 또 오시는데요. “
바들거리는 꽃게를 사 들고 와 냉동실에 넣었다. 두어 시간 지나 꺼내 솔과 가위로 다듬는다. 양념장으로 무칠까 했지만 그냥 탕으로 끓여야겠다. 변화무쌍 바람이 바뀌는 계절엔 무침보다 탕이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이니 잘 다듬어야지. 깨끗이 문질러 씻고, 가위로 여기저기 잘라내며 손을 보다가 가시에 왼쪽 집게손가락 끝을 찔렸다. 피가 좀 났지만, 살림하다 그 정도는 다반사니 뭐 몇 번 꾸욱 눌렀다 말았다. 찔린 흔적은 보이지도 않는다.
탕은 맛있었다. 수게는 암게에 비해 살이 많지 않아 먹을 게 별로라지만, 싱싱하니 살이 많고적은 건 잘 모르겠다. 투명한 살이 그저 부드럽게만 느껴진다. 쌀뜨물에 된장 좀 풀고 무랑 대파, 청양고추 넣고 삼삼 칼칼하게 끓인다. 갓 결혼하고 꽃게탕이 뭔지 모를 때 시어머니는 이렇게 구수하게 국물 내 먹는 법을 알려주셨다. 그 후론 꽃게탕을 해 먹을 때마다 시어머니 생각이 난다. 그땐 제철도 아니었던 땐데….
그게 며칠 전인데 요즘 가시 찔린 자리가 만질 때마다 아프다. 안경을 벗고 보니 가시가 박힌 것처럼 까만 점이 보여 바늘로 파내본다. 안경을 끼고서는 안 보인다. 노안이 영 불편하다. 안경을 벗고 가까이 대 자세히 본다. 너무 가까워도 흐려진다. 안경을 끼지 않았다면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 사물과 거리맞춤이 적당해야 잘 보인다. 맘먹은 대로 들어주던 몸의 시절이 간 것이다.
거뭇하게 보이는 걸 파내긴 했는데 이물감은 그대로다. 괜찮아지겠지, 그만하면 됐어. 적당히 넘어가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일까. 적당한 거리를 가늠해 가시를 잘 뺐으면 시간을 두고 기다려봐. 여기 어디쯤을 지나고 나면 그곳에 가까워질 테니 혹시나, 하는 조바심일랑 접어두고. 너와 나 사이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애매한 추측이 나쁘거나 싫지 않은 것도 인정하지. 그러니 뾰족한 데 찔릴 때마다 적당히 무뎌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