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랑무 Jan 06. 2024

열정과 길막

패터슨의 습작노트

패터슨이라는 소도시에서 버스를 운전하는 운전기사 패터슨. 아침 출근길, 도시락을 들고 나서며 기울어진 우편함을 바로 세우는 것으로 그의 일과는 시작된다. 늘 같은 노선을 달리는 그에겐 ‘시를 쓰는 마음’이 있다. 버스에 타는 사람들의 말이 들리면 때론 웃고, 때로는 심각해진다. 들고 다니는 습작노트에 그때그때의 마음을 담아놓는다. ‘당신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는 누군가에게 ‘버스운전기사’라고 말하며 그가 떠난 자리에서 노트를 꺼내든다. 

 

그의 마음이 ‘열정’이다. 불리는 이름은 중요하지 않고, 지금 하고 싶은 걸 하는 마음과 꾸준함으로 이어가는 것이 삶이다. 남기고 안 남기고는 각자의 몫이다. 직업이나 속한 조직 내에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춤을 추거나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을 품는 것도 ‘나’이다. 예사롭지 않게 흔들리는 마음을 믿어보는 것이 열정이다. 물론 ‘나를 향한 건강한 인정’에서부터 오는 것이다. 내게도 그런 마음이 올까, 하는 생각으로 조직생활을 열심히 했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밑 빠진 구멍을 막는 두꺼비가 된 심정으로 일했다. 작은 구멍은 큰 구멍으로 이어지기 마련. 조직이 문제라기보다 일을 마주하는 마음이 소진되고 있다는 생각이 커져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끔 내게 물었고, 끄적였다. 

 

출근길에 남보다 먼저 계절을 알리던 단풍잎 한 장이 보이면 멈췄다. 익기도 전에 떨어진 푸른 은행열매가 보여도, 퇴근길 도시너머로 기가 막히게 아름답거나 어둡게 하늘이 져도 멈췄다. 물청소가 필요할 거 같은 도시 한편의 분수대에서 개구리가 보글보글 악을 쓰면 녹음해 두고 생각날 때 들었다. 오늘처럼 쨍하게 추운 날, 봄밤을 푸르게 밝히던 초록 떼의 소리를 켜둔다. 나를 거쳐간 초록의 물비린내 고마웠던 밤을 떠올린다. 멈추면 보인다는 말은 맞다. 낯선 도시 지하철역을 함께 걷던 딸이 안 보여 잠시 멈췄을 때 나는 한 방향으로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무리 틈에 섞여있었다. 바깥에서 딸이 손짓을 한다. 복잡한 틈에서 겨우 찾았다. 딸은 나더러 “엄마, 저렇게 바쁘게 가는 사람들 틈에서 그냥 서 있으면 저 사람들 진로 방해하는 거라는 거 알지. 걸으면서 생각해야 돼.” 길을 잃더라도 걸으면서 찾거나, 아니면 그 무리에서 나와야 한다,라고 이해했다. 

 

실은 나를 탓하는 거 같은 딸의 말에 잠깐 맘이 상할 뻔했다. 복잡한 길을 걸을 때는 목적지 외에 딴생각을 하다간 길을 놓치기 일쑤다. 혼자 골목길을 걷고 싶은 맘이 가끔 있어도 꺼뒀었다. 멀티가 쉽지 않은 나라서. 복잡한 길을 함께 걸으며 길을 찾지 못할 바엔 잠시 그 길에서 나오는 것도 방법이다. 나오니 보이는 것들이 새롭다. 잠시 귀머거리가 된 듯 카톡방들의 주위가 조용하다. 새들이 내는 소리가 들리고, 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어땠지, 돌아본다. 목적 없이 길을 걷다가 보이고 들리는 것들을 때때로 기록하며 남기고 있다. 매일이라는 장담은 못한다. 자투리 천들 이어 붙여가며 손바느질만으로 방석을 만든 것처럼 마음 남김도 하나씩 이어 붙이면  글방석 하나는 만들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적는다. 이걸 감히 ‘열정’이라 이름 붙여도 될까 모르겠다. 내게 ‘길막’을 일깨워준 딸 고마워요.





매거진의 이전글 설명이 필요 없는 곳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