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한 번은
눈이 내린다. 겨울엔 방바닥 온기만큼 따뜻한 게 없다. 연탄이 제대로 붙어주기만 한다면. 새벽엔 주로 엄마가 갈러 나갔지만, 나도 연탄 가는 데는 거짓말 조금 보태 도가 텄다. 바닥에 대고 앉은 온기로 때를 짐작했다. 꺼져가는 연탄은 다 타서이기도 하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 서기도 하다. 다 타려면 아직 많이 남았는데 방바닥이 식으면 십중팔구 바람 생각 않고 숨구멍을 닫았거나 조금 열어뒀거나 다. 숨구멍 조절을 했는데도 불이 붙지 않으면 연탄에 습기가 많거나 바람의 방향이 두서없어서이기도 하다. 숨구멍을 활짝 열었다가 깜박 잊고 놂을 탐하면 단단히 값을 치른다. 하얗게 다 타버렸든, 위아래 붙어버린 연탄을 연탄집게로 떼어내려다 하나가 부서지든 해서 번개탄을 사 오거나 남의 집 불붙은 연탄을 빌리거나.
시집을 가니 거긴 연탄도 없다. 아궁이가 있는 부엌에서 군불을 때고 있더라. 아궁이 연결된 방바닥은 까맣게 타서 뜨거운 쪽 바닥이 뜨근뜨근 일어섰다. 뿐인가. 군불이 어디서 타고 들어오는지 타는 내가 날 뿐 아니라 눈까지 매웠다. 공기는 차고 방은 뜨거워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했다. 코는 차갑지만 볼은 발갛게 익었다. 시누들과 삼삼오오 발을 넣고 꽃무늬 화사한 이불 아래서 땀나게 꼼지락거렸다.
숨구멍을 닫으면 불이 붙기 힘들다. 멀리 다녀올 데가 있어 집에 사람이 없을 때는 부러 조금만 열어두기도 했다. 불씨만 간신히 살려두는 거다. 꺼뜨리면 불을 살릴 일이 수고롭단 걸 알기에. 날씨가 오늘처럼 조용히 눈만 내리는 날은 예정대로 흘러간다. 바람이 부는 날은 상황이 달라 나만의 매뉴얼을 따라도 꺼뜨리기 다반사인데. 오래 불을 지핀 집도 마찬가지다. 아궁이와 방바닥의 소통은 흔적을 안 남기기 어렵다. 장작을 많이 넣어 천천히 오래 뜨거울 것인지, 지푸라기로라도 당장 연기를 일으켜 눈물을 감수할 것인지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다. 일용할 양식과도 같았던 연탄과 장작의 겨울준비는 너무도 가까워 적당한 거리라는 게 무엇인지 미처 알지도 못한 채 지나갔다.
어쩌면 한 번은 하얗게 타도 좋았고, 부서져도 좋았을 시절을 살았다. 금이 간 벽 틈으로 스며드는 한기와 연기를 어쩌지 못해 웅숭그린 다음날 아침, 밥을 하기 위해 언 물을 돌로 깨던 '젊은 나'들. 적당한 거리라는 게 있을까. 너무 가까우면 화르륵 타버리고, 너무 멀면 춥다. 적당한 거리란, 좋은 게 뭔지 이미 알아버린 때로부터 시작된 말이다. 나를 돌아보며 살아도 된다고, 그게 개명된 천지의 사명이라고 누군가 말을 해줬을 때 난 그만 목놓아 울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