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랑무 Feb 07. 2024

식기 전에 한 술 떠

입천장이라도 뜨겁게

볕이 드는 마루는 따뜻하다. 입춘 지나 계절 시샘인지 또다시 눈이 내렸다. 닫힌 창으로나마 볕의 온기를 입는 오늘 같은 날이 있다. 여름은 뜨겁고 짧게, 가을겨울은 미지근하고도 길게 몸을 드리운다. 부러 양지를 찾아든다. 겹겹 입어도 뼛속까지 추워 차라리 여름을 잘 견디노라 웅변하듯 말하고 다니는 나다. 그러니 겨울이 오면 푸르뎅뎅 쪼그라든 자두가 된 느낌이다.


아무 물욕 없는 마루에 길게 드리운 볕을 보고 있자니 만인, 만물에게 저리 공평한 그에게 한 줄 볕을 더 구하려는 욕심이 되다 느낀다. 무거운 옷을 이리 걸치고도 과욕을 부리는 자는 나밖에 없군, 실없이 웃었다. 마루 한 조각에라도 스며 오래 따뜻한 볕에 기대고 싶은 욕심만은 포기할 수 없는, 인정머리라곤 없는 사람 역시 나인가. 쬐어도 쬐어도 이상하게 뭔가 고프니. 겨울 탓이다. 


옷을 껴입고, 머플러를 두르고, 모자를 쓰고, 장갑을 낀다. 털부츠를 신고 종종걸음 재촉하던 길에 옷 벗은 나무를 본다. 앙상한 가지에 누군가 둘러 준 머플러 위로 하얗게 눈이 쌓인 걸 본 날에도, 이 둔한 몸에는 오래 볕이 들기를.. 생각했다. 나무는 미리 알고 잎을 떨궈 겨울채비를 했지만, 나는 떨굴 것이 없기에 껴입을 것으로 겨울 준비를 하는 거라고 중얼거리며. 


내 맘만 같으면 나무는 무척 결핍이어야 할 테다. 옷타령, 볕타령에도 감감한 그를 보자니 사람이 살아가는 일은 보태는 일이구나 한다. 어제보다 책 한 권이 더 늘었고+, 온열기를 곁에 뒀지++. 책 옆엔 공책과 연필도 있고+++ 온열기 옆엔 가습기++++. 하나가 다른 하나를 불러. 생활의 감도가 떨어진 건 부족해서가 아닌가 봐. 쌓이고 쌓이다 그만 뭘 가졌는지 처음을 잃거나 못 보는 것이지. 


아침을 준비할 요량으로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장을 봐온지 삼일이면 뭘 샀는지 모를 때가 있어 나선 길이다. 뭘 사긴 했는데 돌아서면 먹을 게 없어서 장을 보러 가지만, 역시 살 게 별로 없다. 입맛도 추워 두터운 기름을 발라야 할 지경인지. 돼지고기에 호박 넣어 얼큰하게 고추장찌개나 할까 하고 수선스런 몸 부대끼며 마트에 들어서는데 온통 달큼한 군고구마 냄새다. 


냄새를 따라가니 맥반석 기계 안에 고구마는 없고 냄새만 가득이다. 냄새의 유혹에 못 이겨 계산에 없던 생고구마 한 봉을 보탠다. 가슴에 품어 와 따뜻했던 군고구마 옛날을 떠올리며 그래, 입천장이라도 뜨겁게 겨울을 호응하자,면서. 다 핑계고, 실은 식어가는 마음을 데우자는 이끌림. 식기 전에 어서 한 술 떠, 혹시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염치불구 당겨 앉아보는. 찬바람 끌탕에 추운 마음 싸맨 옷 위로 속속들이 군고구마 냄새 겹겹을 둘러 왔다. +++++++++++



매거진의 이전글 적당한 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