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욕심 제법
다 어디 갔을까. 물풀로 그린 그림 위에 모래를 뿌려 털며 낄낄대던 날, 풀엔 온통 모래가 묻어 못 쓰게 되고 말았지. 해를 모아 돋보기로 종이를 태우던 날, 그날은 손에 잡히는 뭐라도 태울 수 있을 거 같았어. 모래를 잔뜩 넣은 콩주머니(모래주머니)에 된통 아팠던 날, 그날은 만드는 사람마다 재질도, 색도 달랐던 주머니 만들어준 울 엄마 야무진 손끝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으쓱했는데. 홍역 발진이 따갑고 가려워 더운 여름이 가득 덥던 날, 퉤퉤 뱉은 수박 물 묻은 씨 사이로 들끓던 개미는 또 어떻고. 그 옆 낮은 키로도 아롱다롱 예쁜 채송화 씨주머니 손으로 비비던 날은 다 어디 갔을까. 땀이 나 끈적한 손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던 채송화 깜장 씨는 설탕보다도 잘았는데…. 녹은 단물을 흘리지도 못하면서 갈 곳 욕심은 제법 많았지.
예전 살았던 동네를 걷다 보니 딸들 어린 시절과 겹치면서 걸음걸음 기억이다. 머리 다 커서 후회란 걸 알게 되기 전의 기억은 오늘 걷는 걸음 앞 비낀 한 줄기 따뜻함 때문일 거다. 겪을 때는 몰랐고, 돌아보니 거기 그림 같은 아이 몇 장이 남아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흐르는 시간은 한 가지인데 노는 게 좋아 시간 가는 줄 몰라 그랬을까. 먹고사는 일 걱정 없어 그랬을까. 어른이 된다는 건 나 말고도 책임질 일이 온통 많아진다는 뜻이라서 어른이 된 후론 점점 멀어지는 아이에게 아쉬운 손 흔들었다. 할 일도, 내 손을 바라는 일도 많아 마음 자꾸 급했으니까. 그러다 어디서 한 번씩 내 등을 미는 바람이 불면, 길어지는 그림자라도 보일라치면, 그 자릴 한눈팔며 뒤를 돌아보는 나이가 되었다. 잡을 수 없는 날들이 보인다. 오늘 과거를 걷는 길은 그리움이다. 못난 것은 다 잊은, 젖은 아쉬움 다 마른 버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