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손으로 꼭꼭 눌러 쓴
샤프한 펜슬도 많고, 알록달록 좋은 필기구도 많은데 나는 연필이 좋다. 나무 살에 의지한 뼈, 살을 깎아내야 닿는 소용, 쓰다 보면 닳는 심, 점점 짧아지는 몸이 나와 같기도 하면서. 또 있다. 내게는 없는 향이 그에겐 있다. 숲을 나누어 밝힌 이에게서만 나는 향. 누구도 흉내 낼 수 없고, 닮을 수 없어 더욱. 심과 살의 뿌리가 땅에 닿아 있다는 점도 그렇다. 어떤 경우든 한 가지 색, 지우개 하나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단호함까지 있어서.
고민의 퇴적층으로 살고 있는 내게도 어디선가 씨 하나 날아와 뿌리내린 나무 한 그루로 자랄 수 있다면 기꺼이 연필이 되겠다. 까만 보석을 품겠다. 누군가의 책상 위를 구르고, 가방 속을 유람하며 살겠다. 운이 좋아 향나무가 된다면 필통을 열 때마다 코끝을 스치겠고, 귀 뒤에 비스듬히 섰다가도 부르면 어서 달려가겠다.
아이들 둘이 와서 뾰족한 연필을 찾는다. 찾아보니 연필 끝이 다 뭉툭하다. 있는 것 중 그나마 날렵한 것을 골라주고 나서 나머지 뭉툭한 연필들 모아 깎기 시작한다. 골고루 돌려가며 깎아내고 심을 간다. 창가에 앉아서 연필 몇 자루 옆에 놓고 집중하고 있다. 이렇게 깎은 연필을 애들 필통에 가지런히 놓아주던 때 생각난다. 연필 깎기 쓰지 않고 부러 깎아줬는데 덜 깎인 데 다듬고 요리조리 돌려보다 보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숨도 고르게 되곤 했다.
가늘고 긴 연필에서 오는 향이 먼 데서 온 손님처럼 낯설고도 낯익다. 어린 딸들 고사리손으로 눌러가며 썼던 몽당연필을 아직 버리지 못했다. 소용이 끝나고 기억만 남았고, 추억은 지나고 흔적만 남은 몽당연필. 생각해 보면 버리지 못 한 건 연필이 아니다. 천방지축 뛰는 아이들 마음 읽지 못했던 시간들이 지났고, 빈틈 꼭꼭 메우고 싶었던 욕심과, 이유 없는데 설명을 바랐던 이기심, 어떻게든 될 텐데 헛되었던 조바심까지 미안해서 아이들 흔적을 늦도록 놓지 못했다. 머지않은 때에 이 마음들 흘러가도록 놓아주려 한다.